지난 22일 폭스바겐코리아가 자처해 종아리를 걷었다. 정부 최종 행정처분 전 자발적으로 문제 소지가 있는 모델을 판매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자신들의 억울함에 대해 소명하는 청문회 개최 3일전이었다. 환경부가 정식으로 판매정지를 집행하기 1주일 전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폭스바겐코리아가 서류조작 혐의에 대해 진정성을 갖고 바짝 엎드렸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있다고 했다. 토마스 쿨 폭스바겐코리아 사장이 홈페이지에 올린 ‘차량 판매 중단과 관련하여 고객분들께 드리는 말씀’이란 글에는 수많은 고객들의 울분을 사게 할 문구가 있었다. 쿨 사장은 “기존 고객님들의 차량운행, 보증수리, 중고차 매매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고 강조했다.
환경부가 판매정지 명령을 내린다고 해도 신규 차량 매매가 제한되는 것이기 때문에 기존 고객들이 보유한 차량을 운용하는 데있어 원칙적으로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은 맞다.
문제는 중고차 매매에 아무런 영향이 없다고 한 대목이다. 현재 폴크스바겐 고객들은 보유한 차를 중고차로 팔고 싶어도 못 파는 실정이다. 매물은 쌓이는데 사겠다는 사람은 없어 중고차값은 형편없이 떨어진 상태다. 그런데도 폭스바켄코리아 사장이 원론적인 얘기만 했으니 고객들은 분통이 터질 수밖에 없다. 미국 소비자들은 최대 1200만원까지 현금배상을 받는데 국내 소비자들은 단 돈 한푼 못 받는 상황에 이런 말까지 들으니 더 속이 탈 법도 하다.
폴크스바겐 고객들이 모인 한 유명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쿨 사장에 불만을 표시한 글들이 적잖이 올라오고 있다. 한 고객은 “지금 5세대 골프를 6년 넘게 타다가 카니발로 갈아타려고 해도 중고차값은 헐값으로 떨어지고 매매도 쉽지 않은 상황에 한숨만 나온다”며 “실질적으로는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실제 SK엔카닷컴에 따르면 지난해 10월부터 이달까지 SK엔카 홈페이지에 등록된 폴크스바겐 브랜드의 연식별 주요 차종 매물의 평균 시세 하락률은 11.9%로 아우디, BMW, 벤츠보다 높았다. 특히 폴크스바겐은 2015년식의 평균 시세 하락률이 13.1%로 나타나 연식이 짧은 모델일수록 시세 하락률이 더 컸다.
정태일 기자/killpass@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