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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교별의 초보엄마]⑧출산 이후, 쇼핑
[헤럴드분당판교]아기가 태어난 지 1년이 지나 처음 맞는 여름은 내게 조금 뜻깊은 계절이다. 한동안 살이 찐 몸매 탓에 쇼핑의 욕구를 자제해야 했지만 조금씩 감량되는 모습에 자신감을 찾아 드디어 옷을 살 수 있다는 기쁨이 생겼기 때문이다.

혈액순환이 안 되는 탓에 임신기간 동안 약 30kg가량 살이 찐 내게, 지난 1년은 육아와 다이어트를 해야만 하는 이중고의 시간이었다. 홈쇼핑 채널을 바꿀 때마다 다이어트약과 체중감량에 탁월하다는 음식들이 나를 유혹했다. 하지만 내가 1년 넘게 열심히 한 다이어트는 늘어나는 아기의 몸무게를 감당하며 진행한 육아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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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임신 전으로 돌아가려면 7kg 정도의 몸무게가 남아있었지만 가족과의 여름휴가 때 예쁜 사진을 남기고 싶은 마음에 아이와 함께 옷을 사러 나갔다. 나의 옷장을 열어보면 임신 전 사이즈와 임신 후 사이즈로 나뉘는데 지금은 둘 다 해당사항이 없는 몸매다. 임신 전에는 아가씨로 보이고 싶은 마음에 몸매가 강조되는 옷을 선호했고 임신 중에는 늘어날 수 있을 때까지 늘어나는 옷들을 샀다.

아이와 함께 문화센터와 집 앞을 다니다 보면 아기엄마들의 패션을 눈 여겨 보게 된다. 아기엄마들의 패션 트렌드는 확연히 다르다. 신랑이 백화점 장바구니냐고 물어볼 정도로 여러 유모차에 걸려 있는 격자무늬 가방, 몸매가 커버 되면서도 가벼운 플리츠플리츠 의상, 낮으면서도 편한 샌들과 해외에서 들어온 밀짚모자 등은 많은 젊은 엄마들 사이에서 볼 수 있는 유행 의상이다.

아기를 데리고 다니는 엄마 입장에서 왜 이런 의상이 유행인지 이해가 된다. 아기를 위한 식사 준비물과 젖병, 물, 간식, 기저귀, 아기이불 등 많은 준비물을 담는 가방의 무게는 가벼워야 하고, 언제든 아이가 원할 때 안아줘야 하는 엄마에게 짧은 의상과 높은 구두는 사치일 뿐이다. 또 출산 후 생기는 기미와 잡티 등이 더 많이 생기지 않기 위해 챙이 넓은 모자는 여름필수품이다.

살이 빠지면서 눈에 띄게 보이는 쳐진 살들을 보며 ‘운동을 해야 돼’라는 의지를 불태워 보지만 종일 엄마를 찾는 아이로 인해 운동은 먼 미래의 일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가능하면 몸매가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예쁜 옷을 찾게 되는데, 이런 옷을 찾기가 정말 힘들었다. 유모차를 끌고 여성복 코너를 두 번 이상 돌면서 느낀 점은 한국에는 정말 날씬한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예쁜 옷은 사이즈가 너무 작고, 편해 보이는 옷은 디자인이 너무 별루여서 한숨이 절로 나왔다.

“사이즈가 어떻게 되세요?” 직원이 물어볼 때마다 “나는 아기를 낳아서 살이 많이 쪘어요”라며 물어보지도 않은 말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나는 한 사이즈 작은 걸 굳이 입어보겠다고 낑낑대며 파우더룸 안에서 얇은 천쪼가리와 씨름을 했고 문 밖의 아기는 사라진 엄마를 애타게 찾았다. 아기의 목소리에 마음이 조급해져 드나들기를 반복했다. 몇 번을 돌고돌아 구입하게 된 옷은 편안한 긴 원피스와 매일 조금씩 자라나는 아이의 알록달록한 여름옷들이었다.

요즘 많은 엄마들과 문화센터 수업을 듣는다. 이 곳에서도 나는 최고령 출산 맘이다. 그래서인지 멋진 커리어 우먼이었다는 자신감은 사라진지 오래고 나이 차이가 안 나길 바라는 마음에 수업 전 집에서 아기를 안고 바쁘게 단장을 한다.

학원을 운영했던 나에게 몇몇 학생들은 이런 말을 했었다.

“엄마가 학교에 오는 게 창피해요. 우리 엄마는 너무 늙었어요. 엄마는 너무 뚱뚱해요. 우리 엄마는 너무 안 꾸며요...“ 당시에는 철없던 아이들을 꾸짖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아이들의 꾸밈 없는 본심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아이에게 나는 어떤 모습일까? 아장아장 걷는 걸 좋아하는 아기는 요즘 나를 보며 자주 웃는다. 지금 아기의 눈에 나는 세상에서 제일 예쁜 엄마겠지만, 세상을 조금씩 배워나가는 아이에게 이 타이틀은 언젠가는 버려지게 되지 않을까. 하지만 나는 노력하는 엄마가 되고 싶다. 아이의 눈에 조금씩 많은 사람들이 들어오겠지만 최선을 다하는 엄마가 아이의 눈에는 아름다워 보이지 않을까?

아, 그리고 엄마이기 이전에 여자라는 걸 잊지 않고 싶다. 나만의 시간이 조금씩 허락되는 날부터 다시 열심히 달리고 싶다.

박제스민 violethu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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