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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에서] 중국 완파한 필리핀 외교
필리핀이 중국을 이길 수 있는 분야가 얼마나 있을까. 복싱영웅 파키아오는 중국 어느 복싱선수보다 강할테지만 솔직히 그 외에 딱히 떠오르는 사람도 분야도 없다. 그런 필리핀이 남중국해를 놓고 중국에 완승을 거뒀다. 유엔 해양법협약 제7부속서 중재재판소가 지난 12일 내놓은 500페이지의 결정문은 필리핀의 눈부신 성과였다.

남중국해를 놓고 중국과 분쟁을 벌이는 필리핀은 국제법이란 ‘약자의 무기’를 적극 활용했다. 필리핀은 영유권 문제나 해양경계획정 문제는 아예 언급도 하지 않았다. 오로지 중국이 주장하는 구단선의 법적 근거를 따져 각 지형에 대한 법적 지위에 의문을 제기했다. 순수한 유엔해양법협약상 해석과 적용에 관한 문제로 사안의 프레임을 바꾼 것이다. 

당시 필리핀에 근무하며 제소 과정을 지켜본 우리 외교 관계자는 “현명한 외교가 국가 운명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절감했다”며 높이 평가했다. 국제사회에서 목소리가 큰 중국을 상대로 필리핀은 국제법 논리에 날을 세웠다. 반면 중국은 모르쇠로 일관하며 방어권을 포기한 자만, 그러면서도 스스로 ‘포지션 페이퍼’를 제출한 절차와 의미에 대한 무지, 재판소 결정이 몰고올 후폭풍에 대한 안일함 등이 겹치며 완패했다.

이번 결정은 국제법이 평화의 무기로서 얼마나 강한 힘을 가졌는지 알린 중요한 사건이기도 하다. 이번 결정으로 필리핀과 중국은 단순한 유불리를 넘어 당장의 이익과 입지에 큰 영향을 받게 됐다.

한국은 어떤가. 한국의 국제법 역량은 시간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에서 국제법이 설 자리를 잃고 있는 것이 단적인 예다. 론스타 사태를 통해 통상 분쟁에서도 국제법이 얼마나 큰 위력을 발휘하는지 아픈 경험을 하고 있음에도 외교ㆍ법조계에서 국제법에 대한 지원은 부족한 형편이다.

독도를 놓고 갈등을 빚고 있는 일본은 이미 오래 전부터 국제사법재판소(ICJ) 재판관을 배출해왔고 최근까지도 일본인이 재판소 소장을 맡을 정도로 국제법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번 남중국해 문제를 놓고 호되게 당한 중국도 국제법 역량 강화에 발벗고 나설 가능성이 크다. 강대국 사이에서 냉철한 균형외교가 필요한, 그래서 국제법이 더욱 절실한 한국이 마냥 뒤쳐지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 

김우영 정치섹션 정치팀 기자kw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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