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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증거인멸 사회] 친족이라는 이유로…범인 숨겨줘도 증거 없애도 무죄
지난해 11월 부산에서 아들의 뺑소니 교통사고 현장증거를 은폐한 아버지가 경찰에 붙잡혔다. 사고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아들과 함께 현장에 가 증거가 될 만한 파편들을 주워 달아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아들 이모(31) 씨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도주차량 혐의로 불구속입건했지만, 아버지는 처벌하지 못했다.

이 사건에서 아버지가 처벌받지 않았던 이유는 형법에 명시된 ‘친족간 특례’ 조항에 있다. 형법 155조 4항에는 ‘친족이나 동거하는 가족이 범죄자 본인을 위해 증거인멸을 저지를 때는 처벌하지 않는다’고 규정돼 있다. 인지상정상 친족이 범죄를 저질렀을 때 적법한 행위를 기대할 수 없으므로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취지다. 범행을 저지른 친족을 숨겨주거나 도피시키는 경우에도 이같은 법리(형법 151조 2항)가 적용된다.

같은 이유로 세월호 침몰사고 후 책임자인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을 도피시킨 오모(62) 씨는 법정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유병언 씨의 2촌인 처남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당시 오 씨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검찰수사가 본격화하자 구원파 신도들을 동원해 유 씨를 도피시킨 것으로 밝혀졌다. 그는 ‘김엄마’라 불리는 신도를 시켜 유 씨와 도피에 필요한 정보를 편지로 주고받은 혐의(범인도피교사죄)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은 “오 씨를 ‘김엄마’와 함께 유병언을 도피시킨 공범으로 봐 범인도피죄를 적용해야 한다”며 “오 씨는 유 씨와 친족이라 이같은 죄목으로 처벌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대법원도 원심에 수긍해 지난해 8월 오 씨의 혐의를 무죄로 확정지었다. 앞서 검찰은 “오 씨가 유병언 씨와 친족이라 대부분 혐의에서 책임을 물을 수 없다”며 ‘편지전달행위’ 등 2가지 혐의를 제외하고는 기소하지 않았다.

형법에 따르면 처벌을 면할 수 있는 범위는 ‘친족’과 ‘동거의 가족’으로 한정된다. 호적에 오르지 않는 사실혼 관계에는 이같은 ‘친족 특례’가 적용되지 않는다.

부산지법은 이혼한 남편의 성범죄사건 증거를 없앤 부인 조 씨에게 유죄판결을 내렸다. 조 씨는 2003년 남편에 대한 경찰조사가 시작되자, 남편 차량에 남아있던 범행 증거인 귀금속을 챙겨 내다버린 혐의(증거인멸)로 기소됐다. A 씨는 2002년 남편과 이혼했지만, 범행 당시 아이를 임신하고 재혼할 의사를 갖고 있는 등 사실상 부부처럼 지내온 것으로 조사됐다. 재판과정에서 조 씨는 “남편과 사실상 배우자 관계이기 때문에 증거인멸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형법 151조의 적용대상은 ‘본인의 친족, 호주 또는 동거의 가족’이라 한정돼 사실혼관계 배우자는 포함하지 않는다”며 A 씨에게 50만원의 벌금형을 내렸다. 다만 범인이 친족을 시켜 증거를 없애는 ‘증거인멸교사죄’는 처벌대상이 된다. 판례에서는 이를 ‘범인이 자기 방어권을 남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경우 친족에게도 증거인멸의 죄를 물을 수 있다.

대전지법은 부인과 어머니를 시켜 범행증거를 숨긴 폭력단체 조직원 A 씨의 혐의(증거인멸교사)를 유죄로 판단했다. 대전 일대에서 불법 게임장을 운영하던 A 씨는 2013년 체포될 당시, 부인과 어머니를 시켜 증거물인 영업용 휴대폰을 숨긴 것으로 드러났다. 재판부는 “범인이 자신을 위해 타인에게 증거를 인멸하게 한 행위는 방어권 남용으로 증거인멸교사죄에 해당하며, 이경우 친족도 예외가 될 수 없다”고 판시했다.

고도예 기자/yea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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