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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증거인멸 사회] 美·佛 등 ‘사법방해죄’ 엄벌…韓 ‘인권침해’ 논란 입법 좌초
# 지난 2013년 검찰이 수천억대 분식회계와 특가법상 횡령, 조세포탈 혐의 등으로 효성그룹 오너 일가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효성 측은 압수수색이 예상되는 시점에 핵심 임원들의 컴퓨터와 하드디스크를 모두 새 것으로 바꾸는 등 증거를 인멸한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효성그룹에서 증거인멸 혐의로 처벌받은 사람은 효성그룹 전 지원본부장인 노모(56) 씨 단 1명이었다. 노 씨는 지난 1월 법원에서 징역 8개월을 선고받았다.

검ㆍ경 수사선상에 오른 기업이나 개인이 툭하면 증거인멸이나 위증을 시도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사법당국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반면 미국이나 프랑스 등 주요 국가에서는 이같은 명백한 수사 방해 행위에 대해 엄벌에 처하고 있어 한국과 대조를 이루는 모습이다.

13일 대검찰청에 따르면 대표적인 ‘거짓말 범죄’로 볼 수 있는 무고 및 위증사범 기소자는 지난 5년 동안 각각 약 1만2000명, 9000명으로 집계됐다. 2014년으로 기준 한국의 위증 사범이 1800여명인 반면, 일본의 위증사범은 약 150명으로 우리의 10분의1 수준에 불과했다. 도주와 범인은닉 범죄자의 경우에도 매년 1000명 넘게 덜미를 잡히고 있다.

증거인멸 또한 상황은 마찬가지다. 사법당국의 수사가 시작되면 너나 할 것 없이 일단 증거인멸과 말맞추기, 도주 등 갖은 수법으로 수사망을 피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일단 증거를 없애면 수사에서 입증이 어려운 부분은 법원에서 무죄판단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이런 시도가 공공연하게 이뤄지는 것으로 법조계는 보고 있다. 증거인멸로 받게 되는 불이익보다 얻게 되는 이익이 사실상 더 큰 것이다.

형법 제155조 1항은 ‘타인의 형사사건 또는 징계사건에 관한 증거를 인멸, 은닉, 위조 또는 변조하는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타인의 형사사건에 관한 증거를 인멸하는 경우에만 처벌이 가능하도록 규정돼 있어, 자신의 형사사건 관련 증거인멸은 처벌 규정이 미약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허위 진술의 경우에도 형법상 범인은닉죄로 처벌할 수 있지만 ‘적극적으로 수사를 방해했다’는 입증이 이뤄져야 하기 때문에 현실에서는 적용이 쉽지 않다. 반면 미국은 검사나 경찰에게 허위로 진술을 하거나 증거를 숨길 경우, 증인이나 배심원을 협박하는 경우는 물론 행정부에 허위자료를 제출하는 것까지 사법방해죄를 적용해 처벌하고 있다. 워싱턴주는 사법방해죄로 기소될 경우 3년 이상 30년 미만의 징역형 또는 1만 달러(약 1144만원) 미만의 벌금형에 처한다. 프랑스는 사법작용의 개시 방해, 사법권 행사 방해, 사법권 권위 침해 등 크게 3가지 범주로 나누어 처벌하는 등 적용 범위가 미국보다 광범위하다. 중국도 형법에서 변호인의 증인협박, 회유 등도 ‘변호인의 사법방해 행위’로 규정해 처벌하고 있다.

법무부는 지난 2002년부터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만들어 사법방해죄 도입을 추진했지만 대법원, 대한변협, 학계 등에서 ‘인권 침해 우려’ 등의 이유로 반대하면서 번번이 좌초된 바 있다. 반면 최근 가습기살균제 수사와 관련해 옥시 측의 조직적인 증거인멸이 밝혀지면서 사법방해죄 도입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이혜경 국회 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법학 박사)은 “미국 등의 경우 법과 정의를 정당하게 집행하는 것을 방해하는 일체의 행위를 사법방해로 규율하고 있다”며 “우리 법체계에 부합하는 한도 내에서 법률 개정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양대근 기자/bigroo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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