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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사풀린 공직사회 ]“벌써 더위 먹었나”…정권 말기 레임덕 가속화
[헤럴드경제=이해준ㆍ김대우ㆍ배문숙ㆍ이혜미 기자]“공무원은 원래 영혼이 없잖아요. 위에서 결정을 내리면 그거에 맞춰서 정책을 마련하고 충실히 이행하는 존재예요. 상황이 바뀌고 정책이 바뀌면 그거에 따라야 합니다. 우리는 영혼이 없어요. 허허.”

세종시에 내려와 있는 정부 중앙부처의 한 고위공직자가 농담처럼 던진 말이다. 여기엔 정권 말기 공무원 사이에 퍼져 있는 짙은 무기력감과 패배주의가 배어 있다. 무기력ㆍ무소신ㆍ무책임이 국가정책을 이끄는 공무원 사회를 유령처럼 맴돌고 있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공직사회가 심상찮다. 박근혜정부 임기를 1년반 정도 남겨놓고 여소야대 정국이 겹치면서 공무원 사회가 위와 아래 구분없이 처참하게 무너지는 양상이다. 잇따른 망언과 비행으로 국민적 분노를 사는가 하면 누워서 침뱉기 식의 책임 떠넘기기로 국제적 망신을 자초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논란이 되는 정책을 뒤로 미루면서 시간만 끄는 복지부동(伏地不動) 분위기도 짙어지고 있다.



나향욱 교육부 정책기획관은 “민중은 개ㆍ돼지” 발언 파문으로 국민의 분노를 들끓게 했고,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최대 국정현안인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결정 당시 백화점 쇼핑을 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고교생 안전을 위해 학교에 배치된 경찰관은 여고생과 성관계를 맺어 충격을 주고, 관할 경찰서와 감찰관은 이를 무마하려는 어처구니 없는 일도 발생했다.

현정권의 ‘낙하산’으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부총재 자리를 차지한 홍기택 전 산업은행 회장은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자금지원의 책임을 모면하려다 역풍을 맞아 4조원의 세금을 들여 차지한 AIIB 부총재 자리까지 날리는 등 국제 망신을 자초했다.

이러한 사례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정권이 레임덕에 빠지지 않고선 있을 수 없는 일들이 다반사로 벌어지고 있다. 정부 정책은 손발이 맞지 않고, 책임감과 소신을 갖고 정책을 추진하려는 의지도 보이지 않는다. 도전과 개척정신은 실종된 지 오래다.



보건복지부는 1년 전 발표 날짜까지 정해놓았던 건강보험료 개편 방안을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시물레이션 중이라며 발표를 미루고 있다. 건보료 체계 개편에 대한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개편 이후 이해관계자들의 비판을 우려해 미적거리고 있는 것이다.

최근 기획재정부를 비롯한 경제부처가 서비스경제 활성화와 투자촉진 등 어려 정책을 발표했지만, 많은 정책이 이전에 내놓은 대책의 재탕이거나 정권 교체 이후인 2~3년 후에 추진할 내용들이어서 과연 정책 추진의지가 있는지 의심케 했다. 최대 현안인 조선업 구조조정을 위해 산업통상자원부는 현장애로 타개 등 발로 뛰지만 정작 고용노동부는 ‘준비체조’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윤성규 환경부 장관은 미세먼지 대책의 국민공감도가 떨어진다는 지적에 “미세먼지의 유해성이 과장됐을 수 있다”며 “건강한 사람들은 미세먼지를 그리 걱정 안해도 된다고 한다”는 등의 발언으로 해 환경정책 수장이라는 사실을 의심케 했다. 환경부 산하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의 이정호 국가기후변화적응센터장은 최근 워크숍에서 ‘천황(일왕)만세‘ 삼창을 해 충격을 주기까지 했다.

미래부의 한 사무관은 지난달 프랑스 파리 출장 중 산하기관 직원에게 자녀의 영어 과제물을 시켜 ‘갑질’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롯데홈쇼핑 재승인 심사와 관련한 담당 국장 등 고위공무원들은 금품 로비를 받은 의혹으로 검찰 수사 도마에 올라 있다.

감사원의 징계 요청을 받은 미래부 팀장급 공무원은 민간근무휴직제도를 이용해 중견기업 임원으로 버젓이 근무하기도 했고, 미래부 소속 서기관은 지난 3월 유흥업소 여종업원과 호텔에 갔다가 성매매 단속 중이던 경찰에 현행범으로 체포되기까지 했다.

정부가 국민의 안위를 책임지기 보다 국민이 정부를 걱정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정부도 공직기당을 다잡기 위해 팔을 걷고 나섰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13일 중앙행정기관 감사관 회의에 예고 없이 참석해 “일부 공직자들이 공직자의 본분을 망각하고 국민들이 용납하기 어려운 언행을 한 것은 어떠한 말로도 변명하기 어렵다”며 “대다수 공직자의 사기를 저하시킬 뿐 아니라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저하시키고 국정운영에 큰 지장을 초래하고 있다”고 개탄했다.

현 정권의 책임자들은 공직기강 해이와 복지부동으로 정권의 지지도와 신뢰도가 떨어진다고 우려하지만, 실제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정권의 안위보다 국민의 입장에서 공직기강을 다잡고 정책 추진동력을 복원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hj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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