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흑인 총격’ 인종갈등 불당겨
분노한 흑인사회 항의시위 재점화
“우리는 지금 티핑 포인트에 서 있다.” 워싱턴DC에서 400명이 참여한 평화시위를 조직한 유진 퍼이어는 말했다. 티핑 포인트는 살짝만 건드려도 넘어갈 수 있는 지점을 뜻하는 말로, 미국 사회가 관련 사건이 하나만 터져도 인종 갈등이 첨예하게 불붙을 수 있는 상황임을 시사한 것이다.
공공연하게 존재했지만 미국 사회가 철저하게 억누르고 있었던 인종갈등에 다시금 불이 붙고 있다. 피부색때문에 죽음까지 맞아야 한다는 분노가 흑인 사회에 강하게 퍼지면서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시위가 재점화되고 있다. 백인 경찰 5명이 총격으로 사망한 후 잠시 소강상태였지만 ‘결국 근본 원인은 흑인에 대한 차별’이라는 생각이 고개를 들면서 시위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10일 CNN 방송은 토요일이었던 전날 밤늦게까지 뉴욕, 시카고, 미네소타 세인트폴, 루이지애나 배턴 루지 등에서 시위가 있었으며 이 과정에서 최소 198명이 체포됐다고 보도했다. 또 시위 진압 과정에서 27명의 경찰이 다쳤다고 폭스뉴스는 전했다.
세인트폴에서는 시위대와 경찰이 94번 주간 고가도로에서 대치하면서 최소 5명의 경찰관이 시위대가 던진 유리병과 폭죽, 돌 등에 맞아 다쳤다. 배턴 루지에서도 항의 시위가 진행됐다. 이곳에서는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을 이끄는 저명 운동가인 디레이 매케손을 포함해 125명이 체포됐다. 미네소타와 루이지애나는 최근 경찰관의 흑인 피격 사망사건이 벌어진 곳이다.
조지아 주 애틀랜타에서는 시위대가 75번과 85번 주간도로에서 경찰과 대치했으며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에서도 시위대가 395번 주간도로를 일시 점거했다.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수백 명의 시위대가 베이교를 가로막으면서 통행이 최소 두 시간 동안 막히기도 했다.
치솟은 분노는 경찰들에 대한 직접적 공격으로도 이어졌다. 텍사스 주 샌안토니오 경찰 본부에는 9일 밤 여러 발의 총탄이 날아와 건물 벽에 박혔다. 댈러스 경찰서에는 이날 오후 “테러하겠다”는 익명의 협박전화가 걸려왔다.
상황이 심각해지면서 미국에 또 한 번의 ‘붉은 여름’이 찾아올 수 있다는 우려도 일고 있다. 레드릭 C. 해리스 컬럼비아대 흑인정책사회연구소 국장은 파이낸셜타임스(FT)에 “현재 미국은 잠재됐던 인종 갈등이 끓어오르는 시점에 와 있다”며 “또 다른 ‘붉은 여름’이 다가오고 있다. 상황이 더 나아질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붉은 여름’은 1919년 발생한 미국사상 최악의 흑백 충돌로, 당시 시카고에서 시작된 갈등이 25개 도시로 번져 흑인 23명과 백인 15명이 사망했다.
흑인들 사이에서는 자신이 백인 경관에세 숨지는 다음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도 확산되고 있다. 15세 흑인 소년인 엑세비어 레벨은 AP 통신에 자신이 형과 함께 경찰관의 심문에 걸린 적이 있다며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하고 입을 다물고 ‘네 경관님, 아니요 경관님’이라고만 말했다”고 밝혔다. 31세의 샤논 마셔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경관이) 나를 불러 세울 때마다 겁을 먹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백인 경관들도 총격에 희생된 가운데 시위를 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아 인종갈등 양상은 갈수록 첨예해지고 있다. 세라 페일린 전 알래스카 주지사는 “‘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는 코미디”라고 낮잡아 표현했고, 루디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은 CBS 방송에 출연해 경찰이 흑인을 죽이는 것은 극히 드물게 일어나며 흑인이 흑인을 살해하는 경우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수민 기자/smstory@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