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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샤워소리·변기물 내리는 소리까지 벽간소음 규제미비 ‘날림공사’ 판쳐
살인극 부른 고시텔 벽간소음 왜?


#. 서울 용산구의 한 다세대 주택 원룸에 사는 직장인 A(25) 씨는 집에만 들어오면 신경이 곤두선다. 바로 옆 방에서 들리는 TV소리와 휴대전화 벨소리는 물론 샤워하는 소리, 화장실 변기 물 내리는 소리 등 각종 소음 때문이다. 가끔 옆집 남성의 은밀한 사생활도 바로 옆에 있는 듯 생생하게 들린다. 

혼자 사는 사람들이 많은 원룸이다 보니 윗집에서 아이들이 쿵쿵 뛰거나 가구를 끄는 층간소음은 없었지만 벽을 타고 넘어오는 생활소음 때문에 밤잠을 설치기도 일쑤다. 옆 집 주민과 동거하는 것 같은 느낌이라는 A 씨는 “힘든 직장생활에 집에서까지 소음에 시달리다보니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어 늘 피곤하다”며 “은밀한 소리를 듣고 있자면 화병에 걸릴 지경”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내 사생활도 옆집 사람들이 듣고 있다고 생각하니 숨 한번 제대로 쉴 수 없을 지경”이라며 “계약기간이 끝나면 바로 이사하겠다”고 했다.

최근 경기도 하남에서 이웃 간 층간소음으로 인한 갈등이 살인극으로 번지는 비극이 또다시 벌어진 가운데 벽간 소음으로 인한 피해가 심각하다. 1인가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만큼 원룸ㆍ고시원 등에 벽간소음 문제도 증가하면서 이웃 간 갈등을 부르고 있다.

지난 4월에는 고시원에서 소음 문제로 다투다 칼로 이웃을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서울 광진경찰서에 따르면 60대 남성이 고시텔에서 문을 크게 닫는 등 시끄럽게 굴었다며 같은 고시텔 거주자를 살해했다. 가해 남성은 광진구 자양동에 있는 고시텔에서 같은 건물 거주자가 문을 세게 닫는 등 시끄럽게 굴었다는 이유로 다투다 방에 있던 흉기로 목 부위 등을 3차례 찔러 목숨을 빼앗았다.

서울시에서 주택소음 민원에서 벽간소음 관련 문의는 2014년보다 1.4배 더 많이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7일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벽간소음에 문제로 접수된 상담은 35건으로 2014년(25건)보다 10건 늘었다. 올해 5월까지 총 18건이 접수돼 2015년 상담 건수를 추월할 태세다.

원룸이나 고시원 등은 벽간소음을 막을 법적 장치가 없어 사실상 방치 상태에 가깝다. 국토교통부 ‘주택건설 기준 등에 관한 규정’ 제 14조의2에 따르면 층간소음관련 공동 주택의 세대 내 층간 바닥은 경량 충격음 58㏈ 이하, 중량 충격음 50㏈ 이하의 구조로 설계해야 한다.

하지만 벽간소음과 관련해 국토부 규정에는 세대간 경계벽과 칸막이벽 등을 설치할 때 지켜야 할 소재ㆍ구조, 두께 기준만 있을 뿐 소음 크기와 같은 성능기준은 명시돼 있지 않다.

일각에선 시공과정에서 건축주가 공사단가를 낮추기 위해 값싼 흡음재와 단열재 등을 사용해 벽간 소음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문제도 제기된다. 실제 한 건축협회 관계자는 “관련 규정이 없는 건 아니지만 내용이 복잡해 공사 과정에서 이를 꼼꼼히 점검하기엔 현실적 어려움이 있다”며 단가를 낮추기 위한 위법행위 가능성을 시사했다.

벽간소음으로 발생하는 이웃 간의 갈등 수준은 층간소음 못지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이야기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특히 노후화 주택이나 원룸형으로 이어지는 행복주택 같은 경우엔 벽에 못질 한 번만 해도 소음이 심각한 경우가 많다”며 “층간 소음 대책에 비해 벽간 소음 문제는 방치된 상태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이병규 울산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는 “벽간 소음은 층간 소음보다 개인 사생활 침해 등에도 노출될 위험이 있다”며 “첨단화ㆍ소형화로 인해 좁은 공간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지면서 벽간 소음에 대한 민원은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강문규 기자ㆍ이원율 기자/mkk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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