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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러기 아빠, 정약용
다산 정약용은 팔방미인이다. 실학자, 행정이론가, 기중기 발명가, 지리학자, 교육자, 군왕 자문역, 크리스트교 지도자이다.

품성면에서는 형제 간 우애가 깊은, 정 많은 사람이다. 예능감도 넘친다. 정조가 “보리 뿌리 맥근맥근(麥根麥根)”이라 하면, 다산은 “오동 열매 동실동실(桐實桐實)”이라고 응수했다.

정조가 晶(맑을 정), 벌레 충(蟲) 등 동일한 세 글자를 합쳐 한 글자로 만든 사례를 스무개 가량 댄 뒤 “더 없지?”라고 하자, 다산은 “한 글자 빠졌다”면서 석삼(三)를 들이대, 둘이 박장대소하기도 했다.

정약용은 ‘기러기 아빠’이기도 했다. 요즘과 다른 것은 생이별의 원인이 자녀 교육이 아니라 본인의 정치, 종교 문제로 인한 18년 귀양살이 때문이라는 점이다.

남에게 자식 교육을 전담시키지 않고 자신이 원격 교육했다는 점도 다르다.

다산의 ‘하피첩(霞帖)’은 원격 교육까지 하는 별종 기러기 아빠의 넓은 오지랖을 보여준다.

책 재질은 종이가 아니다. 주말 부부, 월말 부부도 아닌 연말 부부인 정약용 부인의 치마에 쓴 글이다.


하피첩은 부정(夫情)과 부정(父情), 잔소리, 지식의 집합체이다. 부인의 치마 천 위에, 약관(若冠)을 코앞에 둔 10대의 남매를 향해 “어머니께 효도하라”, “문화적 안목을 잃지 마라”, “경직의방(敬直義方:곧음을 숭상하고 정의로서 처방함)을 새기라”라는 잔소리에서부터 처세술, 학습법까지 담았다.

최근 민속박물관의 하피첩 특별전이 끝났다. 하피첩은 ‘이렇게 행하면 당대에 못 이뤄도 후세엔 꼭 이룰것’이라는 희망의 키워드로 끝난다.

과열 경쟁의 구렁텅이에 아이들을 방치하는, 필자를 포함한 이 시대 부모들이 ‘옳음과 느림’의 하피첩 교훈을 꼭 새겼으면 한다.

함영훈 선임기자/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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