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두번째 인생 시작한 ‘國手 조훈현’] 의원 겸직금지 규정…한국기원에 휴직계 제출
“저… 사진 한 장만 찍을 수 있을까요?” 조훈현 의원실에서 국회에선 흔히 보기 힘든 광경이 연출됐다. 소관 상임위원회에 배정된 의원실에 인사차 방문한 정부 관계자가 조 의원의 팬을 자처하며 ‘셀카’를 요청한 것이다. 수줍게 손으로 브이(V)자를 그리는 관계자의 얼굴에서 우상을 만난 환희가 엿보였다.

20대 국회 초선 의원으로 두번째 인생을 시작한 조훈현 의원. ‘바둑 황제’로 불리는 그의 삶은 모든 발자취가 기록이었다. 조훈현의 전성기가 곧 한국 바둑 중흥기의 신호탄이었다. 1962년 세계 최연소(만 9세)로 프로바둑에 입단해 이듬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바둑의 전설’ 세고에 겐사쿠(瀨越憲作) 선생 문하에서 일본기원 프로기사로 활동했다. 1982년엔 한국 기사 최초로 9단으로 승단했다.

승리 기록도 화려하다. 1980년 9관왕, 1982년 10관왕, 1986년 11관왕 등 국내 기전의 전 타이틀 제패를 3회나 이루었다. 입단 후 통산 세계 최다승(1938승) 세계 최다 우승(160회) 등 깨지기 힘든 기록을 세우고 ‘국수(國手)’라는 호칭을 얻었다.

조 의원의 바둑 인생이 값진 이유는 개인의 승리를 넘어 한국 바둑 발전을 위해 몸을 던진 데 있다. 우선 젊은 나이에 제자를 육성해 ‘청출어람’의 본보기가 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올초 방영된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속 천재 바둑기사 캐릭터의 롤모델로 화제가 된 이창호 9단이 조 의원이 키워낸 제자다. 조 의원은 30대에 이 9단을 제자로 받아 집에서 가르쳤다. 마흔 셋에 자신의 모든 타이틀을 이 9단에게 내줬지만 위대한 스승으로서 한국 바둑의 전설로 남았다.

한국 바둑을 위해 ‘제대로’ 일 하고자 여의도에 입성한 조 의원은 지금까지의 바둑인생중 가장 오래 바둑알을 놓고 있다. 국회의원의 겸직 금지 규정 때문에 5월 말 대국을 마지막으로 한국기원에 휴직계를 제출했다. 하지만 빛나는 재주를 마냥 놀릴 수만은 없는 법. 20대 임기 4년 동안 국회 기우회 고문으로 의원들의 바둑을 지도하게 됐다.

유은수 기자/yes@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