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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훅INSIDE] 스크린도어 정비, 2인1조 매뉴얼이 해답일까?
[HOOC=이정아 기자] 구의역 스크린도어 정비노동자 사고 후 서울메트로의 첫 발언은 “김군이 2인1조 정비 규정을 어겼다”였습니다. ‘열아홉 살짜리 아이’의 죽음이라는 참담한 일을 앞에 놓고도 서울메트로는 책임을 회피하는 것만이 최대의 관심사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비정규직 직원 혼자만 스크린도어와 열차 사이로 내보내면서 ‘2인1조 작업을 한다’는 허위서류 작성이 일상화된 조직이니 어련할까 싶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사고 후 안전정비 대안으로 거론되는 ‘2인1조 정비’ 규정이 과연 또 다른 김군을 만들지 않는 해답이 될 수 있을까요. 다수의 시민의 안전을 위해 스크린도어를 고치는 정비노동자는 왜 지금 이 시간에도, 지하철이 운행되는 시간에 가슴을 졸이며 스크린도어와 열차 사이로 내몰려야 하는 걸까요.

구의역 스크린도어에 나붙은 포스트잇

왜 ‘2인1조’ 근무가 원칙이 됐나

2013년 1월 9일, 성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정비하던 정비노동자가 열차에 치여 사망한 뒤 서울메트로는 안전매뉴얼을 만듭니다. ‘스크린도어 정비는 반드시 2인1조가 작업해야 한다’는 규정이 명시화된 것도 이때부터입니다. 이후 스크린도어 사고가 있을 때마다 서울메트로는 “2인1조 안전수칙 준수를 확인하겠다”는 재탕, 삼탕 대안만 내놓았습니다. 이번 구의역 스크린도어 정비노동자 사고 뒤에도 마찬가지였고요.

그렇다면 과연 2인1조 정비가 최선인 걸까요. 서울메트로 측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원칙적으로는 열차운행을 중단하고 정비를 하는 게 맞는데, 심야 운행을 하다보니까 정비 시간이 짧아졌다”며 “그러다 보니 긴급하게 수리를 해야 하는 경우에는 낮에 점검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합니다. 한정된 인력으로 열차가 운행되지 않는 새벽 시간에 열차를 비롯해 스크린도어를 모두 점검하기 벅차다는 건데요.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2인1조 정비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단편적인 대안만 반복되는 이유도 이와 맞닿아 있습니다.


애초부터 부실하게 설치된 스크린도어

열차가 운행되지 않는 2시간여 동안 스크린도어의 오작동을 점검하기 벅차다면, 두 가지 이유가 있을 겁니다. 스크린도어 고장이 너무 잦거나 점검하는 인력이 터무니없이 부족하거나. 서울메트로는 두 가지 문제점을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지난해 서울메트로(지하철 1~4호선 운영) 스크린도어 고장 건수만 1만2134건입니다. 김군이 사고를 당한 당일 구의역서만 59건의 스크린도어 고장이 있었고요. 스크린도어는 애초부터 제대로 설치되지 않았습니다.

이명박 서울시장 재임 당시에 스크린도어를 설치했던 업체는 스크린도어 시공 경험이 전혀 없던 광고회사 유진메트로컴입니다. 서울시는 유진메트로컴에 광고권을 주는 조건으로 스크린도어 설치했고 심지어 이 회사에 유지보수 업무까지 맡겼습니다. 유진메트로컴은 사업권을 따낸 뒤 유지보수 업무는 재용역을 줬습니다. 이는 허술한 외주화 과정의 단면을 보여줍니다.

스크린도어 보수 인력도 턱없이 부족합니다. 스크린도어 정비 작업의 80%를 맡고 있는 은성PSD 직원은 143명으로 돼 있지만 실제로 현장에 투입되는 인력은 87명에 불과했습니다. 사고 당시 구의역을 포함해 강북 49개 역을 관리한 주간 근무조는 단 6명에 불과했죠. 인력난은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2인1조 수칙을 사문화시키고 위험천만한 나홀로 작업을 강요했습니다.

헤럴드의 뉴미디어 HOOC은 시민들의 마음이 담긴 포스트잇을 모두 촬영한 후, 문자화했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는 추모 글 다음으로 가장 많았던 단어는 '미안하다'였습니다.

안전하게 정비할 수 있는 장기적인 방안 마련돼야

지난해 12월 감사원은 ‘서울메트로 점검 시 안전사고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스크린도어 시스템과 열차 운행을 관제하는 시스템이 서로 분리돼 있어 정비노동자가 스크린도어 점검을 한다는 사실을 종합관제소에 통보하지 않으면 열차 진입 시에 안전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크다는 우려였습니다. 하지만 서울메트로는 이런 지적을 무시했고 불과 반년 만에 구의역 사고를 낸 뒤에서야 “스크린도어 시스템과 관제 시스템을 연계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좀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실질적인 대안들이 나와야 합니다. 스크린도어 시공 경험이 없는 광고회사가 스크린도어의 유지보수 업무를 맡고, 열차 운행 중에 2인1조로 스크린도어를 정비하는 것들이 과연 상식적인 건지 질문을 다시 던져야 하는 것이죠. 김기복 시민교통안전협회 대표는 “국민의 안전은 대통령부터 기초자치단체장까지 중앙과 지방 정부의 모든 단계에서 포괄적으로 논의돼야 한다”고 말합니다.

안전사고는 안전의 영역에 머물지 않고 사회의 구조적 문제와 맞물리고 있습니다. 구의역에서 목숨을 잃은 열아홉 살 직원은 용역업체 소속이었습니다. 위험한 작업을 하청업체에 돌리는 위험의 외주화가 참사의 배경에 있었습니다. 구의역에 다닥다닥 붙은 포스트잇에는 “나는 운이 좋아서 살아남았을 뿐”이라는 불안감이 깔려 있습니다. 이는 곧 정부를 향한 시위입니다. 정부는 구의역 포스트잇을 이 사회에서 사는 게 너무 불안하니 어떻게 좀 해보라는 호소로 읽어야만 합니다.

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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