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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경자’ 만나러 간다…인간적 매력까지
내일부터 서울시립미술관서 1주기 기념전
서울시에 기증한 작품 93점 모두 전시
자전적 에세이 등 생전기록도 선보여
‘미인도’ 위작 논란 관련 법정 소송중
미술계 “故人 생전에 했었으면…” 아쉬움



“나는 이제 그러한 것들에 저항해 왔던 마음의 투구를 나도 오직 봄이라는 빽이 있노라고 활짝 벗어던져 본다…바람은 불어도 좋다. 어차피 부는 바람이다. 어디서 일어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바람들, 그 위에 인생이 떠 있는지도 모른다.”

고(故) 천경자(1924-2015) 화백이 생전에 남긴 글의 일부다. 고인의 나이 만 50세가 되던 1975년 4월, 따뜻한 봄의 양광(陽光) 아래 젊은 시절 허다한 슬픔마저도 훌훌 털어 내며 또 다시 봄의 희망을 믿어보기로 하는 여느 여인의 순수한 마음, 자연에 순응하는 성숙한 인간으로서의 겸허함이 드러난다. 

천경자의 ‘황혼의 통곡’(왼쪽)과 고인의 생전모습. [사진제공=서울시립미술관]

꽃같은 인생을 살다 바람처럼 떠나 버린 여류화가, 천경자의 1주기 기념 전시가 오는 14일부터 8월 7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2층에서 열린다. 1998년 작가가 서울시에 기증한 작품 93점 전체가 처음으로 전시된다.

그동안 서울시립미술관 상설 전시장에서 천 화백 작품을 부분적으로 볼 수 있긴 했지만 기증작 전 작품이 한 공간에서 소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시에는 ‘고’(1974), ‘초원II’(1978), ‘막은 내리고’(1989) 등 소장가로부터 대여한 작품을 포함해 100여점이 나온다. 여기에 작가의 자전적 에세이, 삽화, 화문집, 사진, 편지, 인터뷰 영상 등 생전의 기록을 담은 아카이브도 함께 선보인다.

전시 제목은 ‘바람은 불어도 좋다, 어차피 부는 바람이다’. 탁월한 수필가이기도 했던 고인의 글에서 전시 제목을 가져 왔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작가의 문학적 감성과 인간적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전시”라고 소개했다.

천 화백의 장녀 이혜선 씨와 미술계에 따르면 고인은 자신의 작품이 여기저기 판매돼 흩어지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서울시에 93점이나 되는 작품을 한꺼번에 기증하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천 화백이 떠난지 1년이 다 돼 가지만, 한국 채색화의 선구자에 대한 미술사적 재조명은 이뤄지지 못하는 상태다. ‘미인도’ 때문이다.

차녀 김정희씨는 ‘위작 미인도’로 실추된 어머니의 명예를 회복시키겠다며 법정 소송을 시작했다. 지난 4월, 미인도를 소장하고 있던 바르토메우 마리 국립현대미술관장 등 6명을 사자명예훼손 등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ㆍ고발했다. 25년만에 미인도 일반 공개를 추진했던 국립현대미술관은 지난 8일 검찰에 이 그림을 제출했고, 작품을 넘겨 받은 검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등에 감정을 맡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날 고소인 김정희 씨에 대한 조사도 함께 진행됐다. 국립현대미술관과 김 씨 양측 모두 사활을 건 ‘전쟁’이 본격 시작됐다.

미인도 진위 여부를 떠나 소송을 지켜 보는 미술계 시선도 곱지만은 않다. “고인이 소송을 원했겠느냐”는 이유다. “고인이 살아 계실 때 하지 않고 왜 이제와서 소송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말도 나온다.

소송은 시작됐지만 고인은 말이 없다. 검찰은 수사에 속도를 낼 전망이다. 그러나 수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여론전이 들끓는 모양새다. ‘미인도’ 그림이 연일 포털 뉴스에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일부에서는 이 그림이 천 화백의 대표작으로 잘못 인식될 정도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는 ‘진짜 천경자’를 만날 수 있을까. 이곳에도 역시 천 화백 사후, 기증작에 대한 저작권 및 소유권, 대리권 등을 놓고 미술관과 유족 간 갈등이 남아 있다.

김아미 기자/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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