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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뜨거운 퀴어축제’는 性갈등 현장…충돌 간신히 피해
-주최측 행사에 일부 기독교단체 “동성애는 정신병 회개 하라”

-억눌린 갈증 해소 해방구…곳곳서 욕설ㆍ고성 대책 마련해야



[헤럴드경제=이원율 기자] “우리 축제에서 ‘예수’ 찾으면서 온갖 함성을 지르는 몇몇 집회들은 지금 당장에라도 쫓아내고 싶어요. 같은 인간으로서 정말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동성애는 정신병이에요. 환자들에겐 치료가 필요한 것지 축제가 필요한 게 아닙니다.”

퀴어축제에 참여한 시민들이 부스를 돌아보고 있다.
외국인들 또한 퀴어축제에 참여, 개성있는 복장으로 행사를 즐기고 있다.

지난 11일 오전 서울광장. ‘제17회 퀴어문화축제’에서 부스를 운영하는 성소수자 대학생 김모(24ㆍ남) 씨는 격양된 목소리를 감추지 않았다. 김 씨는 “상대할 가치조차 없죠. 아무리 그래도 저게 우리한테 통할까요?”라며 되물었다. 한편 같은 시각 시청광장에서 십자가를 들고 동성애 반대 시위를 하던 오모(41ㆍ남) 씨는 “저들이 회개를 안 하면 나라가 망합니다”라며 혀를 찼다.

행사는 시작부터 끝까지 축제보다도 ‘일촉측발’ 갈등의 장으로 보였다.

퀴어 축제의 하이라이트인 ‘퍼레이드’. 차량에 올라탄 공연팀이 참여자들의 호응을 유도하고 있다.
‘동성애 지구종말’ 팻말을 들고 행사장에 난입한 한 시민.

‘QUEER I AM, 우리 존재 파이팅’이란 슬로건과 함께 열린 이번 ‘퀴어문화축제’는 김 씨와 같은 성소수자를 포함, 일반 시민과 외국인 등 5만여명(주최 측 예상ㆍ경찰 추산 1만여명)이 참여했다. 이들은 인권단체와 정당, 대학 동아리 등이 참여하는 100여개의 부스를 돌며 퀴즈쇼, 프리허그 등 행사를 즐겼다. 축제 참가자들 중 여성이 상당히 많았다. 어림잡아 여성 참여자는 전체 60프로 가까이 되는 듯했다. 이들은 그동안 억눌린 성에 대한 갈증을 풀듯 평소 ‘쉽게 볼 수 없는’ 풍경이 즐비했다. 검은 핫팬츠를 입은 건장한 20대 남자를 비롯해 스모키 화장의 남성 공연단 등은 보는 이를 놀라게 했다. 직장인 윤모(28ㆍ여) 씨는 “발 디딜 틈이 없다”며 “퀴어문화에 관심 있는 사람이 이렇게 많을 줄 몰랐다”며 신기해 했다.

이런 분위기도 잠시, 서울광장 밖에서도 퀴어 문화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기 시작했다. 특히 이들 회개를 주장하는 오 씨와 같이 ‘각별한’ 관심을 보인 일부 기독교 단체의 반대집회는 그 자체가 축제로 보일 만큼 대규모를 이뤘다. 대립이 불붙기 시작했다.

퍼레이드 중엔 동성애에 반대하는 한 남성이 차량꼭대기에 올라가는 위험한 장면이 연출됐다.
한 남성이 퍼레이드를 막기 위해 차량에 뛰어들었다가 제지당하고 있다.

오후 2시. 노래ㆍ댄스를 비롯한 퀴어 축하공연이 이어지는 가운데 대한문 광장에서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등으로 구성된 ‘서울광장 동성애퀴어축제반대 국민대회 준비위원회’가 본격 활동을 시작했다. 이들은 대형스크린을 설치하고 스피커를 통해 퀴어축제를 하는 방향으로 “늦지 않았으니 회개하라”는 설교를 이어갔다. 목사 이모(48ㆍ남) 씨는 “저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기 위해 왔다”며 “필요하다면 충돌도 불사하겠다”고 핏대를 세웠다.

오후 4시 40분. 행사 하이라이트인 1시간 길거리 ‘퍼레이드’가 7대 차량으로 시작됐다. 하지만 바깥에서 두 집단이 마주하는 순간, 이들 갈등은 극에 달했다. 을지로 근처에선 한 남성이 퍼레이드 차량에 뛰어들었다. 회현사거리 쪽에선 또 다른 남성이 차량 꼭대기에 올라가 “동성애는 죄악”이라며 소리를 지르다 경찰에 제지됐다. 퀴어 행사 참가자들 몇몇은 퀴어축제를 반대하는 사람들을 향해 욕설과 함께 손가락 욕을 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행사간 마찰은 이어졌다. 특히 오전 10시엔 40대 여성이 “축제를 인정할 수 없다”며 행사장 출구에서 경찰과 몸싸움을, 오후 2시엔 ‘동성애 지구종말’이란 피켓을 든 노인이 행사장에 난입해 10여분 가량 실랑이 벌이다 경찰에 끌려 나갔다.

다행히 행사는 화약고였을 뿐 대형 사고는 일어나지 않은 채 마무리됐다. 하지만 일각에선 다음 이어질 행사에 우려를 보이기도 했다. 지난해 행사에서 보였던 서로의 혐오엔 크게 달라진 게 없다는 것이다. 대학생 박진아(21ㆍ여) 씨는 “묻지 마 살인사건도 이어지는 판에 내년에도 이런 모습이 계속된다면 분명 대형사고 하나는 터질 것 같다”며 걱정을 표했다.

yu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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