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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더스카페] 일반인을 위한 시로 읽는 경제학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 “두 길이 노랗게 물든 숲속에서 갈라져 있었습니다.(…)나는 낮은 관목 숲으로 꺾어져 내려가는 한 쪽 길을 내가 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내려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나는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그리고 그것이 모든 것을 바꾸어놓았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미국의 국민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않은 길’이다. 미국 플로리다애틀랜틱대 윤기향 경제학 교수는 경제학 개론서에 이 시를 소개했다. 미국이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를 맞아 선택한 게 바로 그동안 가지 않은 길, 바로 양적 완화라는 통화정책이었으며 이후 미국의 많은 것을 바꿔 놓았다는 설명이다.

논리적인 학문인 경제학을 감성의 언어인 시를 접목시켜 쉽게 풀어쓴 ‘시가 있는 경제학’(김영사)에는 이 외에도 많은 시가 등장한다.

시가 있는 경제학/윤기향 지음/김영사

중국의 부상으로 세계경제 질서의 재편이 이뤄지고 있는 현상을 T.S. 엘리엇의 ‘4월은 잔인한 달’에 비유하기도 한다. 1929년 엘리엇은 시 ‘황무지’를 통해 유럽문명의 몰락을 예견한 바 있다. 이렇게 책에 등장하는 시는 모두 28편으로 영미시, 한국시, 중국시, 일본시 등 다양하다.

책은 모두 16강으로 구성됐으며, 제 1강은 1920년 미국의 대공황과 아시아 금융위기,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등 과거의 경제위기를 돌아보면서 남긴 교훈에 주목한다. 위기는 반복되기 때문이다. 중국의 부상을 다룬 제2강에는 중국의 미국추월론에 대한 시각을 담고 있다. 경제규모만으로 봤을 때 중국이 미국을 따라잡으려면 매년 7%대의 성장률을 내야 하지만 낙관적이지 않다는 얘기다.

4강부터는 경제학의 주요 개념, 수요와 공급, 기회비용, 가격의 역설, 총생산과 고용 등을 고전학파와 케인스학파의 논리로 나눠 설명해나간다.

이 책의 미덕은 우선 일반인들의 눈높이에 맞춰 경제학 개념들을 설명해나간 데 있다. 특히 논리와 이론 대신 현장을 끌어들여 알기쉽게 풀어나간게 장점이다.

가령 이런 식이다. 명목가치와 실질가치를 설명하는 자료로 제공된 것은 2015년 박스오피스 모조가 발표한 역대 흥행영화 순위. 전 세계적으로 22억 달러의 흥행수입을 올린 ‘타이타닉’(1997년)이나 28억 달러의 흥행작 ‘아바타’(2009년)가 유력할 듯 하지만 흥행수입 1위는 1939년에 상영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이다. ‘타이타닉’은 5위, ‘아바타’는 14위. 이는 현재의 금액으로 환산한 실질수입에 답이 있다.

명목가치를 기준으로 삼아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게 되는 경우는 일상에서 흔히 일어난다. 가령 한국주식시장의 규모가 과거 50년동안 2만배가 커졌다는 식은 바로 명목가치를 기준으로 산정된 것으로 둘을 명확히 구별하지 못하면 숫자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

세계 각국의 최대 경제현안인 성장과 복지에 대한 저자의 흥미로운 설명도 눈길을 끈다.

저자는 ‘복지가 성장보다 우선’이라는 입장인 오바마노믹스를 설명하면서 ‘아궁이론’을 제시한다. 즉 경제의 근간인 중산층이 튼튼해야 경제가 균형있게 성장한다는 논리로, 저자는 이를 ‘아궁이론’으로 부른다. 바로다산의 시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다산이 유배지 강진에서 쓴 ‘다산사경첩’에는 이런 시구가 있다. “푸른 돌 평평히 갈아 붉은 글자 새겼으니 차 끓이는 조그만 부뚜막 초당 앞에 있구나. 반쯤 다문 고기 목 같은 아궁이엔 불길 깊이 들어가고 짐승 귀 같은 두 굴뚝에 가는 연기 피어나네”. 바로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경기효과’와 아궁이의 매커니즘이 닮았다는 얘기다.

복지재원에 대한 저자의 조언도 귀기울일 만하다. 2001년과 2003년 두 차례에 걸쳐 부시 미 대통령이 실시한 대대적인 감세조치가 기업 투자에 미친 영향을 저자가 연구한 결과를 보면, 감세는 기업투자를 촉진하는데 실패했다. 즉 법인세 인상이 기업투자의 감소를 가져온다는 기존의 주장이 반드시 타당한 건 아니라는 얘기다. 납세자의 저항이 가장 적은 것으로 알려진 간접세 증세의 부정적 일면도 짚었다.

시장중심의 고전경제학과 정부의 역할을 중시하는 케인즈학파로 양분된 경제학 대신 중도적 입장에서 설명해나가고 있다는 점도 이 책의 특징이다. 경제는 어렵다는 인식을 깨는 일반인을 위한 경제교양서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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