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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숭례문 기와 옛 제조법 택한 이유는…2000년 기와사 엿보기
[헤럴드경제=함영훈기자] 한국 기와의 역사는 최소한 2000년을 헤아린다. 토기의 역사가 1만년인데, 초기 기와는 토기 재료 및 제작술과 흡사했다고 한다. 점토 100%로 제작한 점이 같았다. 토공(土工)이 와공(瓦工) 노릇까지 한 것이다.

그러나 토기와 기와는 달라야 한다는 사실을 발견하는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토기처럼 점토만 써서 기와를 만들었더니 굽는 과정에서 뒤틀림이 생겨 기와지붕을 잇는데 아귀가 맞지 않는 경우가 자주 발생했던 것이다.

창덕궁 상량정의 기와

점토 100%로는 기와의 방수와 윤기을 담보하지도 못했다. 특히 하늘에서 온갖 풍파를 이겨내야 하고, 사람이 올라가 밟아도 깨지지 않아야 하는데, 점토로만 만들어 강도가 충분치 않았다.

우리 선조들은 다양한 시도를 하면서 토공과 와공은 분리된다. 와공들은 점토에 다른 흙을 섞어보기도 하고, 모래를 조금 또는 많이 섞어보기도 했다. 이같은 시행착오 끝에 나온 최적의 기와 ‘레시피’는 점토9 모래1의 배합이었다.

그리고 기와의 틀인 와통 운영기술을 높여 점토와 모래가 통 안에서 잘 섞이고 촘촘한 밀도가 생기도록 한 뒤 적당한 온도에 구워냈다.

이같은 9대1의 전통적인 기와 제조 노하우는 현대에도 이어졌다. 아울러 현대에 들어서는 와통을 이용하지 않고 산업기계로 점토와 모래의 밀도를 최고로 높여 강도와 방수를 담보하는 첨단공법도 함께 개발된다. 기계식 제작은 기와의 윤기를 더했다.

북촌마을의 기와

숭례문을 복원할 때 현대의 기계식 제작은 배척된다. 시간이 오래걸리더라도 와통을 이용해 사람의 손으로 밀도를 담보했다. 이유는 현대적 기계공법을 이용해 지나치게 고밀도로 기와를 만들었더니 방수는 완벽한데, 통풍이 되지 않아 실내에 습기가 과도하게 차는 등 생각지도 못했던 부작용을 낳았기 때문이다.

경주 금장리.황룡사터 발굴된 통일신라 귀면와

기와의 발달사에서 보듯, 옛 것은 후진적이고, 요즘 것은 선진적이라고 단언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그만큼 우리 선조들의 손재주는 때론 현대기술로도 뛰어넘지 못한다.

기와를 통해 우리 주거문화의 특성을 한눈에 볼수 있는 특별전이 열린다. 문화재청(청장 나선화)과 사단법인 한국매장문화재협회(회장 조상기), 국립김해박물관(관장 임학종)는 오는 14일부터 9월 18일까지 국립김해박물관에서 ‘기와, 공간을 만들다–최근 발굴 자료로 살펴본 영남지역의 기와’전을 개최한다.

집모양뼈그릇, 통일신라

특히 이 자리에는 지금까지 확인되지 않은 4~5세기 가야시대 기와집의 고증을 둘러싼 스토리도 담긴다. 그간 고구려 백제 신라 3국의 기와집은 궁궐 등을 통해 확인됐지만, 가야의 궁과 저택은 흔적만 있을 뿐 지붕을 어떤 재질로 썼는지 확인되지 않았다.

대가야의 수도인 고령 송림리 토기 제작장에서 건축에 필요한 벽돌 등이 발견됨에 따라 가야 기와집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하는데 학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일본 도쿄대박물관이 소장 중인 고령 대가야왕궁터 출토 연꽃무늬수막새도 만나 볼 수 있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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