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폴크스바겐그룹의 디젤스캔들이 터진 이후 8개월이 지나도록 기준치 보다 최대 8배 가까이 질소산화물을 내뿜는 ‘조작차량’ 12만5500여대가 아직 ‘회수’되지 못하고 있다.
정부 리콜 방침 발표 이후 첫 단추조차 꿰지 못하고 번번이 무산되면서 미세먼지 원인으로 직결되는 차량들이 여전히 국내 도로를 달리고 있는 셈이다.
리콜이 지지부진한 결정적 요인은 문구 하나 때문. 정부는 리콜계획서에 디젤 배출가스를 조작했다는 ‘임의설정’ 문구 삽입을 요구하는 반면,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가 이를 거부하면서 그동안 끌어온 모든 리콜 준비과정은 원점으로 돌아가게 됐다.
8일 환경부에 따르면 환경부가 리콜계획서에 ‘임의설정’을 명시하도록 지속 주장하는 이유는 향후 벌어질 법적 소송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환경부 관계자는 “배출가스를 조작했다는 ‘임의설정’ 표현이 문건으로 남는다면 나중 소송이 진행돼 재판이 열렸을 때 문서 상 증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환경부는 앞서 리콜명령 위반을 이유로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를 검찰에 고발했다. 이 말을 뒤집어보면 ‘임의설정’ 문구를 넣는 것은 소송을 염두에 둔 것이지 문제가 된 차량을 회수해 결함을 시정하는 기술적 부분과는 크게 연관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환경부도 독일 본사에서 공수된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에 대해 문제삼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환경부가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의 3번째 리콜계획서마저 반려시키면서 리콜을 진행하려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환경부는 폴크스바겐그룹이 미국에 제출한 수준의 리콜계획서를 요구하고 있다. 미국 리콜계획서에는 배출가스 조작을 시인하는 문구가 들어간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 측은 헤럴드경제에 “현재로서는 미국에서도 재판이 진행 중인 부분으로 현재 당사가 알지 못하는 부분이며, 또한 (최종합의서가 나오는) 오는 21일까지는 함구령이 내려져 있는 상황”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미 그룹 본사 최고경영진이 배출가스 조작을 시인하고 물러났는데도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가 리콜계획서에 ‘임의설정’ 문구를 넣지 않는 것은 리콜에 성실하게 임하지 않는 모습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의 방침이 명확한데 이를 따르지 않고 시간을 끌면서 문제가 된 다수의 차들이 리콜되지 않고 아직 공도를 달리고 있다. 여기에는 업체의 책임도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리콜이 기약 없이 미뤄지면서 폴크스바겐 고객들도 인내심을 잃어가고 있다. 이들은 환경부에 리콜대신 환불명령을 내릴 것을 요구하기로 했다.
국내 폴크스바겐 소송을 대리하는 법무법인 바른 측에 따르면 문제가 된 EA189엔진 장착 폴크스바겐 소유주들이 조만간 환경부에 배출가스 조작 차량에 대한 리콜협의를 중단하고 환불명령을 내릴 것을 요구하는 청원서를 제출할 계획이다. 대기환경보전법 50조 7항에 따르면 정부는 환불을 포함한 자동차 교체명령을 내릴 수 있다고 바른은 설명했다.
정태일 기자/killpass@heraldcorp.com
☞임의설정=일반적인 운전이나 사용조건에서 배출가스 시험모드와 다르게 배출가스 관련 부품의 기능이 저하되도록 그 부품의 기능을 정지, 지연, 변조하는 행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