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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28개의 포스트잇] 구의역
[HOOC=이영돈 인턴기자] 얼마나 무서웠을까. 지하철과 스크린도어 사이 한 뼘 틈은 열아홉 비정규직 노동자가 생을 마감하기에 턱없이 좁았다. 구의역 9-4 승강장을 찾았던 그날도 열차는 달리고 멈추기를 반복했다. 그는 문과 문 사이로 내몰렸다.

추모 포스트잇이 9-4 플랫폼 스크린도어를 빼곡히 채웠다. 다닥다닥 붙은 포스트잇을 찬찬히 읽었다. 명복을 빈다는 편지 다음으로 가장 눈에 띈 단어는 ‘미안하다’. 미안하다, 상대방에 대해 마음이 편치 못하다는 또 다른 말. 시민들은 왜 그에게 미안하다고 전하고 싶었을까.


미안하다는 말이 꾹꾹 눌러 담긴 포스트잇을 보며 화도 났다. 정작 미안하다고 말해야 할 사람들은 변명만 늘어놓았다. 서울메트로는 지난 3년간 똑같은 사고로 노동자 3명을 희생시켰다. 그러나 위험한 작업에 꼭 필요한 ‘2인 1조’ 수칙마저 지키지 못할 만큼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지 않았다. 사고가 나자마자 서울메트로는 청년이 매뉴얼을 지키지 않아 죽었다고 책임을 떠넘겼다. 죽은 사람 앞에서도 담당자들은 자신의 안위만 챙겼다. 그들은 비겁했다.

그런데 누군가를 질타하는 마음 뒤로 물음 하나가 생겼다. 분노할 자격이 있는가, 취재가 아니었다면, 선배가 추모 공간을 취재하라는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면 나는 구의역에 왔을까. 쉽게 답을 할 수 없었다. SNS상에서 ‘좋아요’를 누르면서 마음의 짐을 덜어내려고 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나는 그 청년이 될 수도 있었고, 그의 친구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피해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하면서 평소와 똑같은 일상을 보내지 않았는가.

헤럴드의 뉴미디어 HOOC은 시민들의 마음이 담긴 포스트잇을 모두 촬영한 후, 문자화했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는 추모 글 다음으로 가장 많았던 단어는 '미안하다'였습니다.

그 좁은 틈에서 혼자 죽음을 맞이한 청년. 공구 가득한 가방에 컵라면과 스뎅 숟가락을 넣고 다니던 그 청년에게 나는 빚을 졌다. 스크린도어에 비친 내 모습은 어딘가 모르게 한심했다.

‘미안합니다.’ 현장에 준비된 포스트잇에 펜을 들어 변명을 썼다. 이 짧은 다섯 글자로 빚을 갚을 순 없겠지만 이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그에게 아무 도움도 줄 수 없었으니까.

다시 회사로 돌아갈 시간이 됐다. 비명 지르며 달리던 열차가 속도를 줄이고 문과 문 사이 좁은 틈을 만들었다. 그 청년을 으스러지게 한 그 틈을 사이를 건너며 생각했다. 구의역을 다시 찾아와야겠다고.


[하늘로 보내는 구의역 포스트잇, 528개의 편지] 기사보기

ddonddonn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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