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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일 현충일 ①] ‘죽어서도 눈감지 못하는 그들’...유공자인정 소송 10명 중 1명 승소
- “국가유공자 인정해 달라”는 행정소송ㆍ심판 해마다 수천건…대부분 인정 못 받아
- 거짓말로 유공자 인정됐다가 박탈…‘가짜 독립유공자’는 양심선언으로 화제 모으기도


[헤럴드경제=양대근ㆍ고도예 기자] #. 1936년생인 A 씨는 보성중학교에 다니던 열 네 무렵 6ㆍ25 전쟁이 발발했다. 피난을 가던 중 전쟁의 참혹함을 목격하고 당시 곤지암 전투를 벌이고 있던 6사단에 자원입대 뜻을 밝혔다. 하지만 사단 측은 “나이가 어려서 군인이 될 수 없고 대신 후방 업무를 하라”면서 A 씨에게 탄창과 박격포탄을 나르는 일을 시켰다. 그러나 이천 고개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총탄을 맞아 대퇴부 관통상을 입고 평생 불편한 몸으로 살게 됐다. A 씨는 2013년 국가보훈처에 국가유공자 신청을 했지만 “객관적 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거부당했다.

#. 북파공작원이었던 B 씨는 40여년 전 한 야산에서 40㎏이 넘는 배낭과 총을 짊어지고 침투 훈련을 받다가 발을 헛디뎌 오른쪽 어깨 근육과 치아, 척추 등을 크게 다쳤다. 이듬해 하사로 전역한 그는 39년간 상처를 짊어지고 살다가 “이대로 죽기엔 너무 억울하다”며 보훈처에 유공자 등록을 신청했지만 비대상 결정처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해 B 씨는 행정법원에 취소 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 측은 “국군정보사령부 사실조회결과와 진단서 등 김씨가 낸 증거만으로는 공무수행 중 발병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며 기각했다. 
‘호국보훈의 달’인 6월을 맞아 순국선열들의 정신을 기리는 다양한 행사들이 열리고 있지만 국가유공자 신청을 했다가 정부와 법원으로부터 외면당한 이들은 어느 때보다 쓸쓸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들은 “죽기 전이라도 명예를 회복하고 싶다”고 강변하지만 정부 측은 “거짓으로 유공자 신청하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며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헤럴드경제DB>

‘호국보훈의 달’인 6월을 맞아 순국선열들의 정신을 기리는 다양한 행사들이 열리고 있지만 호국보훈의 달이 더 쓸쓸하고 가슴 아픈 사람들이 있다. 국가유공자 신청을 했다가 정부와 법원으로부터 거절당한 A 씨와 B 씨 같은 이들이다.

이들은 “죽기 전이라도 명예를 회복하고 싶다”고 강변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 측은 “거짓으로 유공자 신청하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반박하고 있어 평행선만 달리는 모습이다.

5일 법조계와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한 이들이 요건ㆍ상이등급 확인 등을 이유로 법원에 접수되는 행정소송은 매년 2000건에 육박한 것으로 조사됐다. 같은 해 처리되지 못하고 이월된 소송을 전부 포함한 것으로 실제 1년 안에 처리되는 건수는 1000건 정도다.

이렇게 법원을 통해 유공자로 인정받는 인정률은 2012년을 기점으로 점차 낮아지고 있다. 지난 2012년의 경우 955건에 대한 선고 가운데 188건만 유공자로 인정돼 승소율이 24.6%지만 2013년엔 21.8%, 2014년에는 15%까지 낮아졌다. 지난해의 경우 승소율이 10.5%까지 떨어졌고 올해 4월까지도 11.6%에 그치고 있다.

행정소송보다 절차가 간편하고 별도의 비용이 들지 않는 행정심판의 경우에는 국가유공자 인정률이 더 낮다. 연간 2000여건이 접수되는데 이중에 실제 인용되는 비율은 3~5% 수준이다. ‘인용’은 행정심판 청구요건을 구비하고 있고 청구인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결정을 말한다.

이처럼 인정률이 낮은 이유는 ‘유공자 혜택’을 노리고 거짓으로 신청하는 경우와 실제 억울한 이들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밤을 따다 나무에서 떨어져 다쳤음에도 정찰을 나갔다가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며 국가유공자 자격을 얻은 전직 군간부 C 씨가 뒤늦게 거짓말을 한 사실이 들통나 유공자 자격을 박탈당하고 법원으로부터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기도 했다. 당시 재판부는 “피고인이 잘못을 뉘우치고 있지만 국가유공자 제도를 악용하는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엄한 처벌을 내릴 필요가 있다”며 양형 이유를 밝혔다.

이와 대조적으로 지난해에는 독립유공자의 후손인 D 씨가 증조부의 독립운동 공적이 사실과 다르게 등록된 것을 뒤늦게 알고 “제 증조부는 독립운동가가 아니다”고 고백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독립유공자 후손 가운데 양심 선언을 한 이는 D 씨가 처음이다.

보훈처는 국회 국정감사 질의에서 “전문의ㆍ변호사 등 외부전문가가 참여하는 보훈심사위원회와 재판부 사이에 공무관련성 인정 여부에 대한 시각차와 소송과정에서 제출된 추가자료 및 신체ㆍ진료기록 감정결과 등에 따라 실제 유공자로 인정되는 비율에 차이가 나고 있다”며 “앞으로 사실조사 및 자료보완을 강화하고 재판부의 판결 경향을 전향적으로 검토해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bigroot@heraldcorp.com



<사진> ‘호국보훈의 달’인 6월을 맞아 순국선열들의 정신을 기리는 다양한 행사들이 열리고 있지만 국가유공자 신청을 했다가 정부와 법원으로부터 외면당한 이들은 어느 때보다 쓸쓸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들은 “죽기 전이라도 명예를 회복하고 싶다”고 강변하지만 정부 측은 “거짓으로 유공자 신청하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며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헤럴드경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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