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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플&스토리]이은경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 “약자 보듬는 독립군처럼 일하겠다”
-이은경 여성변회 회장의 ‘쿨’한 법조 인생

-‘정운호 의혹 사건’은 법조계 자성 기회로

-다만 여성 변호사에 대한 왜곡시선은 문제

-좋은 사회를 위한 불쏘시개 역할이 중요



[헤럴드경제=박일한 기자] 정운호(51)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구명 로비’ 의혹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전직 고위 판사와 검사의 ‘전관예우’ 관행은 법조계에 대한 신뢰를 땅으로 떨어뜨렸다.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데 수임료를 수십억원 씩 받을까’, ‘돈 있고 힘 있는 사람들이 쉽게 풀려나는 건 다 이유가 있었다’고 울화통을 터뜨리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이번 사건의 핵심 역할을 한 최모 변호사는 여성으로서 흔치 않은 부장판사 출신으로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개인 사생활에 대한 언론들의 폭로까지 이어져 한때 존경받던 부장판사에서 호기심의 대상으로 추락했다.

이은경(52ㆍ사법연수원 20기) 한국여성변호사회(여성변회) 회장을 만난 건 정운호 구명 로비 사건의 또 다른 핵심 인물인 검사장 출신 홍만표(57) 변호사가 서울중앙지검에 처음 출두한 날이었다. 이 회장은 에둘러 표현하지 않았다. 요즘 분위기가 너무 치욕스럽다고 했다. 법조인들이 일반인들보다 더 분노하고 있다고도 했다.

“그 정도 수임료를 받는 건 굉장히 예외적인 케이스예요. 사무실 운영조차 힘들어 하는 변호사들 많습니다. 변호사 가운데 자기 꿈을 ‘변호사 그만 두는 것’이라고 하는 분도 있어요. 변호사들 처우라는 게 알려진 것보다 훨씬 열악합니다.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죠. 그런데도 법조인들이 모두 부도덕한 집단처럼 지탄받으니 화가 나는 거죠.”

이은경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은 사회적으로 상대적인 약자를 돕는 것을 사명으로 생각하는 이다. 그는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게 평생 숙제”라고 했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여성 대상의 범죄가 극성을 부리고 있는 시점, 그의 생각과 철학은 뭘까. 사진=박현구 기자/phko@heraldcorp.com


▶“법조계, 전체가 자성하는 계기로”=이 회장은 얼마전 여성변회에서 외국인 근로자를 위한 공익 전담 변호사를 뽑은 사례를 예로 들었다. 6개월간 월 150만~250만원을 주는 업무로 1명 모집에 20여명이나 지원했다.

“생각보다 훌륭한 인재들이 너무 많아 놀랐어요. 최종 면접 5명 중 3명이 외고 수석졸업생이었죠. 합격한 분은 연대 로스쿨 상위 5% 졸업생이었습니다. 궁금해서 왜 여기 지원했냐고 물었어요. ‘저는 나사와 같은 존재가 되고 싶어요’라고 하더군요. 그런 변호사들도 꽤 많습니다.”

이 회장은 이번 기회를 법조계 전체가 자성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도 판사 출신입니다. 전관예우 혜택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죠. 고위직 판사, 검사들이 많이 일하는 대형 로펌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요? 지금 누가 누구를 손가락질할 상황은 아니라고 봅니다. 법조인들은 이번 일을 자성의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스스로 세금은 제대로 내고 있는지, 법조 브로커들의 유혹에도 떳떳하게 일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올 1월 여성변회 9대 회장에 선임된 이 회장은 사회의 약자를 돕는 걸 자신의 사명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자신에 대해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고아와 과부를 돌보겠다’고 신에게 약속했다”고 말할땐 진정성이 느껴졌다. 하고 싶은 일을 물을 땐 “이타적인 삶을 살고 싶다”고 했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게 평생 숙제”라고 했다.

이런 생각은 실제 그의 삶의 큰 영향을 줬다. 서울중앙지법 재직시절인 1994년 성희롱 가해자에게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한 최초 재판의 배석판사로 주요 역할을 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성희롱 관련 손해배상사건이었는데 피고에게 3000만원의 배상책임을 부과했다. 12년간의 판사 생활을 끝내고 2002년 변호사로 개업한 이후부터는 범죄피해자지원센터 감사, 경찰청 인권보호위원, 대한변호사협회 사랑샘재단 이사, 국가인권위원회 비상임위원 등을 맡으며 인권 운동을 쉼없이 해왔다.

성과도 꽤 있었다. 이 회장이 맡았던 사건의 의뢰인 가운데 이 회장의 뜻에 동의해 여성변회와 대한변협 사랑샘재단에 기부하는 사람도 있었다. 매달 200만~400만원 씩 보내주는 기업 최고경영자도 있었고, 이혼사건으로 받은 위자료 1억5000만원을 선뜻 내놓은 여성도 있었다.

그 돈은 여성변회 아동학대특별위원회 탄생의 거름이 됐다. 특위는 울산과 칠곡 계모 사건 등에서 피해자들을 위해 무료로 법률지원을 했다. 울산 아동학대 사망사건의 경우 여성 변호사 155명을 공동변호인단으로 구성해 아동학대 사건에서 최초로 살인죄 유죄 판결을 이끌어 내는 성과를 올렸다.

“올해도 특위에서 아동학대 사건을 전담하는 여성 변호사를 고용해 일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상담한 건은 300여건이 넘고요, 올해도 현재 10여건 상담이 진행 중입니다. 한국인과 필리핀인 사이 자녀들에게 아빠를 찾아주는 ‘코피노’ 소송도 하고 있고요.”

이 회장은 최근 잇따라 발생한 여성 혐오 사건에 대해선 “갈등을 조장하는 말을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며 말을 아꼈다. 다만 여성 변호사에 대한 이야기로 여성들이 겪는 현실을 우회적으로 설명했다.

“몇몇 언론에서 여성 변호사를 야한 옷으로 외모만 치장하는 ‘접견 변호사’로 취급하더군요. 돈 있는 수감자를 위해 접견하고 사식 넣어주는 게 일인 사람들로 비하했습니다. 치를 떠는 여성 변호사들이 많았습니다. 정운호 사건의 주요 인물인 최모 변호사도 여성이어서 더 나쁜 시선으로 바라보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런 것들도 여성혐오의 일부죠.”

이은경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은 사회적으로 상대적인 약자를 돕는 것을 사명으로 생각하는 이다. 그는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게 평생 숙제”라고 했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여성 대상의 범죄가 극성을 부리고 있는 시점, 그의 생각과 철학은 뭘까. 사진=박현구 기자/phko@heraldcorp.com



▶지금은 지탄 대상이지만, 결국 정의를 세우는 역할은 법조인이=이 회장은 여성 인권을 높이는 한 가지 방법으로 여성이 더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력 있고 정의감, 사명감을 가진 여성 변호사들이 더 많이 정치를 해야 여성의 인권이 높아질 것으로 생각한다. 실제로 2010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강남구청장 후보 경선에 참여한 적도 있다.

“여성변회에서 여성 정치 지도자를 키우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풀뿌리 민주주의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는데 기초 지자체엔 늘 인물이 부족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한번 나서면 어떨까 생각하는 겁니다. 물론 어느 당을 지지하든 상관없구요.”

이 회장은 올해 여성변회에 ‘정치아카데미’를 만들 계획이다. 이곳에서 정치 토론을 하고 훌륭한 여성 변호사를 발굴해 기초자치단체 의원 출마도 지원할 계획이다.

“여성 변호사들은 기존 남성 중심의 법조 문화와는 상대적으로 많이 동떨어져 있습니다. 쉽게 말해 술집 가고, 접대하고 이런 거 잘 못합니다. 대신 조금 더 투명하고, 소통을 많이 하려고 노력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성들이 정치를 많이 하게 되면 정치가 조금 더 깨끗해지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 회장은 요즘 정운호 사건으로 법조인들이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결국 정의를 다시 세우는 역할도 법조인들의 몫이라고 했다.

“인권이 성장하고 사회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발전하기 위해선 법과 정의가 바로서야 하는 원칙은 변함은 없을 겁니다. 고(故) 하용조 온누리교회 목사께서 저에게 ‘독립군이야 독립군’이라고 하셨던 말씀이 기억나네요. 정말로 그렇게 사회가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도록 불쏘시개 같은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jumpcu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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