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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실감정 도마에…미술계 ‘이우환 위작’ 후폭풍 예고
-2012년 7월 한국미술감정평가원 감정위원 9명 모두 “진품”

-2016년 국과수 감정 결과에선 가짜로 드러나

-감정평가원 공신력 타격…대체 감정기구 없어 더 문제

-“위작 유통 갤러리도 처벌 필요…감정교육제도 시급”




[헤럴드경제=김아미ㆍ구민정 기자]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가 1년여 동안 압수 수사 중이었던 이우환 화백의 그림 13점이 모두 가짜라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감정 결과를 2일 발표함에 따라 미술계 후폭풍이 예고됐다.

경찰은 압수된 그림 13점 이 외에도 위작으로 의심되는 이 화백 그림 소장처를 다수 파악하고, 갤러리 간 자금 흐름도 포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사서명 위조 혐의로 구속 중인 위조총책 현 모씨(66)씨와, 같은 혐의로 입건돼 수사 중인 위작 화가 B(40)씨가 지난 2012년 ‘점으로부터’, ‘선으로부터’ 등 이 화백 그림 50여점을 위조해 유통했다는 진술을 확보함에 따라, 향후 경찰 수사는 국내 갤러리 등 위작 유통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국과수 감정 결과 위작으로 밝혀진 ‘점으로부터’. [사진=헤럴드경제DB]


▶경찰 발표 왜 늦어졌나=2012~2013년 인사동 일부 화랑에서 이 화백의 위작들이 수십억원에 유통됐다는 첩보를 받은 경찰은 지난해 6월부터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이후 위작 유통에 가담한 화랑들을 상대로 압수수색을 펼치고, 화랑 간 자금 흐름까지 파악했다. 지난 1월 중순에는 경찰이 공식 의뢰한 민간 감정기관 3곳이 “모두 위작”이라는 감정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윤곽이 어느 정도 잡혔음에도 불구하고 수사 경과 및 결과 발표는 이뤄지지 않았다. 여기에 올해 1월 중순, 수사를 이끌어 왔던 팀장이 정기 인사로 교체되면서 의혹이 더욱 증폭됐다. 이러다가 없던 일이 되는 게 아니냐는 추측도 흘러 나왔다.

지지부진하던 경찰 수사가 급물살을 타게 된 건 지난 5월, 위작에 가담한 유력 용의자 현 모씨(66)가 구속되면서다. 현 씨는 수사를 피해 지난해 7월 일본으로 도주했다가 지난 4월 일본 경찰에 검거돼 한달 후 국내로 송환됐다.

경찰은 수사 발표가 늦어진 것에 대해 “위작과 비교할 진품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토로했다.

경찰에 따르면, 진품을 소장하고 있던 미술관에서 수사 협조에 난색을 표했고, 위작을 밝히는데 있어 더 많은 기준 작품이 필요했던 경찰로서는 미술관을 설득하는 작업이 필요했던 것. 경찰은 “1970년대 작품 뿐만 아니라 1980년대 작품까지 비교해야 한다고 해서 발표가 늦어졌다”고 설명했다.

한편 미술계에서는 위조ㆍ유통에 관여한 국내 갤러리들까지 수사가 확대될지 주목하고 있다. 미술계 한 인사는 “위조범 꼬리자르기 식 수사가 아닌, 유통에 가담한 갤러리들까지 적극 수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위조된 것으로 드러난 이우환 작품 감정서. [사진제공=한국화랑협회]

▶국내 유일 권위 감정평가원 공신력 타격=이번 위작 사건으로 한국미술품감정평가원(감평원)은 공신력 논란을 면치 못하게 됐다.

본지는 경찰이 압수한 위작 1점(1979년 작 ‘선으로부터, 99.8×99.8㎝)의 ‘감정결정서’를 지난 2월 확보한 바 있다. 여기에는 미술평론가 오광수(전 국립현대미술관장) 씨와 엄중구 한국미술품감정평가원 대표 등 9명의 갤러리 대표로 구성된 감정위원들이 모두 “진품” 사인을 한 것으로 돼 있다.

감정 결과가 4년만에 뒤집히면서 감평원에 대한 공신력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특히 ‘출처가 작가가 확인한 작품과 동일함’이라는 모호한 이유로 진품 결론을 내렸던 것으로 돼 있어 부실감정 문제도 함께 제기될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이들 중 다수는 현재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추진하고 있는 이중섭ㆍ박수근 전작도록(카탈로그레조네) 사업 추진위원장과 연구위원을 맡고 있어 향후 이 전작도록에 대한 공신력까지 의문이 제기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문제는 감평원을 대체할 전문 미술감정 기구가 없다는 것이다.

최근 국내 미술시장이 급격히 커지고 있는 추세인데다, ‘단색화’ 열풍으로 국내는 물론 해외시장에서도 이 화백을 비롯한 원로 화가들의 작품이 대거 유통되고 있는 상황에서, 그나마 국내 유일 권위의 감정기구인 감평원의 업무가 ‘올스톱’되면 화랑들의 거래까지 마비될 것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위작 유통 처벌 법조항 필요…감정교육제도 시급”=이번 경찰 발표로 ‘불확실성’을 제거했다는 측면에서 미술계는 오히려 시장에 모멘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이 화백은 이미 세계 미술시장에서 국내 대표 화가로 입지를 굳혔기 때문에, 이번 위작 사건으로 입을 타격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 화랑 관계자는 “의혹을 계속 키우는 것보다는 차라리 결론을 짓고 다시 시작하는 편이 미술시장 전체를 위해 낫다”고 말했다.

미술계에서는 이제라도 미술 관련 법 제도를 재정비하고 전문 감정위원들을 키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경찰 감정 과정에 참여한 최명윤 국제미술과학연구소 소장(명지대 문화예술대학원 객원교수)은 “국가가 나서서 감정교육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인문학과 과학이 결합된 ‘과학적 감정’으로 객관적인 감정을 할 수 있는 전문가들을 국가가 나서서 양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 소장은 또 “위조범을 잡고 위작 유통 경로를 밝혀도 처벌을 할 수 있는 제대로 된 법 조항이 없다”며 “갤러리들은 위작인 줄 모르고 팔았다고 해버리면 그만인데, 위작을 판매ㆍ유통한 사람도 처벌할 수 있는 법 조항부터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술품 전문 공인중개사’ 육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미술평론가 정준모 씨는 미술 분야에서 석사 이상의 학위를 소지한 자, 실무경험을 갖춘 자, 세무 등 관련 법 조항에 대한 전문 지식을 평가하는 국가자격시험을 통과한 자 등 일정 기준에 부합하는 전문가들을 공인 중개사로 육성하고, 이들을 통해 미술품을 거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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