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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회의 땅에서 진앙지로...中리스크에 허리 휘는 韓산업
[헤럴드경제=최정호 기자] “말도 안되는 가격으로 일어붙이는데 당해낼 재간이 없습니다”

최근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 조선사 직원의 한숨섞인 말이다. 우후죽순 난립한 중국 조선소들이 말도 안되는 덤핑으로 그나마 뜨문뜨문 나오는 신규 물량을 싹쓸이 하고 있다. 단순이 낮은 임금 수준을 등에 업은 덤핑이 아니다. 일단 물량만 확보하면 중앙ㆍ지방 정부, 국영 은행이 대놓고 자금을 하기에 가능한 모습이다. 중국 정부발 시장교란 행위가 지금 전 세계 조선업 위기의 진앙지인 셈이다.

[사진=게티이미지]

25일 STX조선 채권단은 회의를 열고 법정관리 방안을 검토했다. 한 때 전 세계 800여개 조선사 중 4번째로 많은 일감을 확보했던 STX조선이 4조원이 넘는 자금을 수혈받고도 채 2년을 버티지 못한 것이다. 덴마크의 선박금융기관 DSF는 ‘5월 해운시장 리뷰’라는 보고서에서 올해만 세계적으로 200개 조선소가 폐업할 것으로 예상했다. 유가 하락으로 시작된 해운사의 위기가 조선업 불황으로 이어진 시장 상황이 가장 큰 요인이지만, 그나마 나오는 물량마져도 중국 업체들이 덤핑으로 싹쓸이 하며 위기에 부채질을 하고 있다. 지난 4월 중국 공상은행 자회사 ICBC리싱이 발주한 초대형 벌크선 10척 모두 낮은 선가에 자국 조선사에 흘러간 것이 대표적인 예다. DSF는 “중국 조선업의 오더북(수주잔량) 70%는 납기 연장 위험이 있다”고 경고할 정도로 ‘자국 조선사 밀어주기와 덤핑 수주’는 일상화가 되고 있다.

전삼현 숭실대 교수는 “중국 당국이 중국 기업들을 지원하는 것은 WTO(세계무역기구)나 FTA(자유무역협정) 정신에 위반하는 것”이라며 “중국 기업들은 전혀 글로벌 시장에서 견제를 받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중국의 이런 ‘막가파’식 행동은 조선업이 처음은 아니다. 자국 제품에만 보조금을 지급한 TV, 정부의 무차별 대출이 과잉 생산으로 이어진 철강, 또 최근 중국발 단가 급락에 어려운 LCD, 샤오미로 대표되는 스마트폰 등 설비 산업부터 첨단 제품까지 중국발 시장 교란은 일상화가 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정부가 기업을 직접 지원해서는 안된다’는 WTO의 규정이나 자유무역을 표방하는 한중FTA 정신 따위는 아랑곳 없다. 심지어 남의 나라 특허와 디자인까지 대놓고 배끼며, 자국 시장은 물론 글로벌 시장 교란까지 꿈꾸기도 한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전기차용 베터리 차별 지원’ 같은 비관세 장벽은 차라리 애교스러운 수준이다.

[사진=게티이미지]

문제는 이런 중국의 물량 공세가 반도체와 자동차, 2차 전지 등 우리의 몇 안남은 ‘먹거리’ 산업으로까지 번질 가능성이다. 올해 초 중국이 메모리 반도체 육성을 위해 50여 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힌 것이 대표적인 예다. 10년 내 최첨단 고부가 메모리 시장 잠식은 불가능하지만, 범용 저가 제품 시장은 충분히 교란시킬 수 있다는 우려다.

이 같은 중국발 산업 생태계 교란에 세계 각국의 문제 의식도 커지고 있다. 최근 유럽연합(EU) 의회는 WTO가입 15년 경과를 이유로 ‘시장경제지위’를 요구하는 중국에 대해 반대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찬성 546표, 반대 28표로 통과시켰다. “중국은 정부 보조금 지급 관행과 투명성 결여로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 체제를 갖추지 못했다”고 직시한 것이다. 또 미국은 올해 4월까지 벌써 9건의 대중국 반덤핑 제소에 나섰다. 지난해 전채 건수 6건을 훌쩍 넘은 것이다.

반면 우리 정부의 대응은 사실상 없는 수준이다. 미국이나 유럽연합처럼 국가대 국가 기 싸움이 힘들다. 기업들이 미국이나 유럽으로 향하는 생산 물량을 중국에서 동남아로 적극 돌리는 수준이 사실상 전부다. 업계 한 관계자는 “애플도 대놓고 배끼는 샤오미를 어쩌지 못하는 중국에 대한 법적 조치를 우리 기업들이 개별적으로 하긴 힘들다”며 사실상 두 손 놓을 수 밖에 없는 처지를 전했다.

이와 관련 전 교수는 협상 도중 정부와 국회의 양적완화 논란으로 타결이 늦어지고 있는 용선료 협상을 예로 들며 “정부와 정치권이 기업을 지원하는 것이 미숙하다. 그나마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은 규제 완화다. 투자 여력이 있는 주체를 발굴해 투자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choij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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