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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길용의 머니스토리] 삼성중공업 해법, 2004년 삼성카드 데자뷰(?)
[헤럴드경제=홍길용 기자]신용대란이 한창이던 2004년 삼성캐피탈과 삼성카드가 합병한다. 이후 삼성전자가 유상증자에 참여하고 삼성생명은 5조원의 신용공여(credit line)를 선언한다. 덕분에 삼성카드는 채권단의 도움으로 경영정상화를 이룬 다른 카드사와 달리 외부의 지원 없이 자체적으로 경영정상화에 성공한다.

1999년 이건희 삼성회장은 삼성자동차 사태로 곤욕을 치른다. 이 회장의 사재인 2조8000억원 상당(삼성 측 추산)의 삼성생명 지분을 채권단에 내놓았다. 빚쟁이들한테 시달리는 경험을 두 번씩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삼성카드 사태의 자체해결 노력으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2014년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 합병이 추진됐다. 상황을 보면 좀 더 어려운 쪽이 삼성엔지니어링 쪽으로, 2003년 삼성캐피탈과 닮았다. 그런데 합병은 주주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만약 성사됐다면 삼성카드 식 해법이 적용됐을까? 합병 무산 후 삼성엔지니어링은 유상증자로 자본잠식에서 벗어났고, 이재용 부회장의 사재도 투입됐다.



삼성중공업이 18일 채권단에 자구안을 냈다. 자산을 팔고, 비용을 줄여 재무구조를 건실히 할 테니 빌린 돈의 갚을 시기만 좀 늦춰달라는 게 골자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채권단은 만기연장도 지원인 만큼 대주주인 삼성전자도 뭔가 내놓기를 바란다는 후문이다.

딜레마는 삼성중공업 입장에서 채권단이던, 그룹이던 밖으로부터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데 있다.

올 1분기말 기준 삼성중공업의 유동자산은 10.5조원으로, 유동부채 10.3조원 보다 많다. 자기자본도 5.15조원에 달하고, 부채비율도 약 250%로 대우조선보다는 훨씬 낮다. 얼핏 괜찮아 보인다. 그런데 1년 안에 갚아야 할 단기차입금이 무려 2.94조원이다. 불과 석 달 전인 작년 말보다 1조원이나 급증했다. 올 1분기에 영업활동에서 1조원의 적자를 본 탓이다. 당장 가진 현금은 현금성자산 1조원과 단기금융상품 9900억원이 전부다. 매출채권이나 미청구공사대금, 기타유동자산 등은 당장 현금화하기 어렵다. 쉽게 말해 돈 들어오는 곳은 없는데, 가진 돈 보다 나갈 돈이 더 많은 상황이다. 이대로면 자칫 부도가 날 수도 있는 상황이다.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돈 빌려준 곳에서 갚을 시기를 늦춰주면 된다. 다른 방법은 다른 곳에서 돈을 끌어와 빌린 돈을 갚는 방법이다. 전자는 채권단, 후자는 그룹의 도움이 필요하다.

삼성중공업의 최대주주인 삼성전자, 2대 주주인 삼성생명은 모두 돈이 많은 곳이다. 공교롭게도 2003년 삼성카드 정상화 과정에서도 호흡을 맞춘 짝이다. 아무리 돈 많은 회사라고 하더라도 자본형태로 계열사를 지원하려면 주주들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빌려주는 것이라면 사정이 다르다. 여신은 금융기관의 주요한 수익원이다. 또 현행법상 금융기관의 동일인 여신한도는 자기자본의 20%다. 삼성생명의 자기자본은 27조원이 넘는다.

결국 누가 삼성중공업 경영악화에 책임이 크냐가 논란의 핵심이 될 전망이다. 채권단은 ‘삼성’임을 믿고 돈을 빌려줬다고 할 테고, 삼성 측은 ‘업황 부진 탓이 클 뿐 최대주주가 크게 경영을 잘못 한 것은 아니다’라는 점을 강조할 듯 싶다. 어느 쪽이 맞는 지, 현재로선 판단이 쉽지 않다.

지난해 2월 삼성중공업이 발행한 3년 만기 5000억 원 짜리 회사채의 투자설명서에 삼성그룹과의 연결고리를 강조한 대목이 있다. 당시 회사위험에 대해서 “삼성그룹은 우수한 경영관리능력을 보유하고 있어 뛰어난 사업ㆍ재무역량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었다. 이 회사채 인수를 주관했던 NH투자증권도 “삼성그룹 계열사로서 우수한 신용도, 정책금융한도 등 다양한 자금조달 및 활용여력이 재무안정성을 강화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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