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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더스카페]젊은 작가의 소설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작가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예민하게 들여다보는 이들이다. 그 중에서도 젊은 작가들은 더 촉수가 빨리 움직인다. 그들의 작품 속에 녹아있는 것들이야말로 동시대의 감성이라해도 틀리지 않다.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희망 없는 세대와 미래 없는 시대를 사유해온 ‘문지문학상’‘김승옥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박솔뫼(31)가 네번째 장편소설 ‘머리부터 천천히’(문학과지성사)를 냈다. 이번 소설 역시 그 특유의 끊임없이 부유하는 사람들 얘기가 중심이다.

머리부터 천천히/박솔뫼 지음/문학과지성사

총 여덟 부분으로 나뉜 소설은 나의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혼수상태에 빠졌다 깨어났다 하는 아버지는 정신이 들 때마다 속리산에서 빨래를 하는 할머니 이야기를 내내 한다. 그리고 내게 그걸 꼭 써야 한다고 말한다. 아버지 자신의 소설이지만 자신도 모를 수 있는 길을 잃은 사람들 이야기인 소설을 시작하지만 나는 번번이 실패한다.

또 다른 화자인 병준은 큰 사고를 당해 중환자실에 누워있다. 중환자실 뒤쪽 벽에 붙어 있는 큰 세계 지도 위에는 환자들의 이름이 씌어져 있다. 온 세계에 점점이 찍힌 이름은 혼수상태에 빠진 환자들이 어떤 도시에 머물거나 헤매고 있는지 확인시켜준다. 5년전 병준과 헤어진 옛 애인 우경은 보호자 자격으로 중환자실을 매일 드나든다. 이전같은 감정은 없지만 알 수 없는 심경으로 출근하듯 면회를 오던 우경은 주말에 시간을 내 병준의 이름이 적힌 지도 위 장소들 중 부산의 작은 동네를 찾아간다. 무작정 동네의 골목들을 걸어내며 우경은 병준이 하려고 했던 게 뭐였나 떠올린다. 생각없이 들어간 한 식당에서 우경은 ‘이덕자의 그림’이라는 훌륭한 정물화를 보게된다. 그러나 그림과 화가에 대해 알려진 것은 없다. 식당의 할아버지는 “이덕자는 조용한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누군가나 무언가에 대해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걸 보여주는 듯하다.

소설은 갈피없이 떠오르는 생각을 그대로 적어내는 서술로 이어진다. 잘 정돈된 언어로 쓰여진 문장을 읽어내는 것과 다른 의식을 흐름을 따라가듯 흘러가는 읽기의 또 다른 느낌을 맛볼 수 있다.

거의 모든 거짓말/전석순 지음/민음사

‘철수 사용 설명서‘로 2011년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전석순(33)의 새 장편소설 ‘거의 모든 거짓말’(민음사)은 거짓말 자격증 2급 소지자인 주인공이 자신보다 급수가 낮거나 거짓말을 전혀 하지 않는 사람일지 모르는 상대를 거짓말로 속이는 작품이다.

거짓말 자격증 소지자는 백화점 매장이나 레스토랑에 투입돼 직원들의 친절도를 판별하는 일을 하거나 급수가 높은 경우 누군가의 역할을 대신해내는 심부름을 한다. 거짓말은 능력과 스펙이다. 주인공은 스펙을 갖추려 발버둥친다. 2급에서 1급으로 자격증의 급수를 높이려는 주인공은 거짓말에 대한 철학과 자신감을 보이며 이제 사랑 앞에서 거짓과 진실을 버무리기 시작한다. 여자는 성공적인 거짓말로 사랑을 유지시키는데 탁월함을 발휘하지만 끝을 드러내고야 만다.

소설은 건조하고 차분한 어조로 사건을 이어가지만 거짓말의 끈을 쫒아가야 하는 긴장감 역시 팽팽하다.

머리 검은 토끼와 그밖의 이야기들/자음과모음

현실과 환상을 자유자재로 오가며 소설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있는 최민우(41)의 첫번째 단편소설집 ‘머리검은 토끼와 그 밖의 이야기들’(자음과모음)은 일상의 틈새에서 발견한 삶의 특별한 순간을 그린 여덟편의 단편으로 구성돼 있다.

소설 속 인물들은 뭔가 모자라고 삐걱이는 우리의 모습과 닮아 있다. 험난한 세상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는 곳을 찾기 위해 1인용 돈까스집에 그려진 가짜 문 속으로 사라지는 사람들(‘레오파드’),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덜컥 아이부터 임신한 의붓딸과 그녀의 남자친구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한물 간 트로트 가수(‘머리검은토끼’), 우연히 취직하게 된 ‘떴다방’에서 오래전 집을 나간 어머니가 떴다방 알선책이 돼 있는 모습으로 재회하게 된 나(‘반:’)등 온전치 못한 반쪽 인생들이다. 하지만 못난이들이 서로 만나 쩔그럭대면서 만들어내는 사람냄새와 유쾌함이 이 소설의 매력이다.

가령 이런 식이다.

“나는 열심히 길을 설명하는 어머니의 옆얼굴을 보았다. 명치와 심장 사이가 찌르르 흔들렸다. 어머니가 겪었을지도 모를 이런 저런 풍파에 대한 연민일 수도, 동종업계 종사자로서 갖는 공감일 수도, 아니면 태어나서 처음 경찰서에 다녀온 충격의 여파일 수도 있었다. 역류성 식도염일 수도 있었겠지만.”(‘반:’)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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