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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는, 왜?]반효(反孝)의 시대… 늙은 부모에 업힌 청년들
[헤럴드경제=김성훈 기자]# 이탈리아에 사는 A(28) 씨는 대학을 마치고서도 일자리는 찾지 않고 더 공부를 하겠다며 아버지에게 학비와 생활비를 요구했다. 아버지는 아들 양육을 더는 감당할 수 없다며 법원의 판단을 구했지만, 아들의 대학원 학비까지 지원해야 한다는 판결을 받았다.

#영국에 사는 B(34ㆍ여) 씨는 명문대에서 박사 학위를 이수한다고 부모를 속여 학비ㆍ출장비 등의 명목으로 돈을 뜯어냈다. 그가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이런 식으로 받은 돈은 25만 파운드(4억여 원). B 씨는 그 돈을 마약과 유흥, 비밀 결혼식 등에 탕진해 결국 철창 신세를 지게 됐다.

‘다 자랐으면 독립해서 제 살 길 찾아야 한다’는 것은 동서고금 인류의 상식이자, 자연계의 법칙이었다. 그 상식이 21세기의 인류에게서는 무너지고 있다. 다 커서도 부모의 지갑만 바라보는 자식 때문에 많은 나라가 골머리를 앓고 있다. 자식이 부모를 업은 모습을 상형한 문자가 ‘효(孝)’라면, 이제는 거꾸로 늙은 부모가 자식을 업고 사는 ‘반효(反孝)’의 시대다.




이전에 듣도 보도 못한 현상에 좀 더 걸맞는 설명을 붙이기 위해 사람들은 온갖 용어를 만들어냈다. 우리에는 ‘캥거루족’이라는 말이 익숙하지만 이탈리아에서는 ‘큰 아기’라는 뜻에서 ‘밤보치오니’(bamboccioni)라 부르고, 영국에서는 ‘부모지갑에서 퇴직 연금을 빼먹는 자식들’(Kids In Parents‘ Pockets, Eroding Retirement Savings)을 줄여 ‘키퍼스’(Kippers) 세대라고 한다. 프랑스에서는 부모 집에 얹혀사는 28살짜리 아들 탕기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이후 ‘탕기 세대’라는 말이 생겼다. 부메랑족(부메랑처럼 돌아온 자녀), 패러사이트 싱글(부모에게 기생하는 독신), 습노족(노인을 핥아먹는 자녀들) 등도 같은 현상에 붙은 다른 이름이다.

실제 현재 청년층의 부모에 대한 의존도는 역대 어느 때보다 크다. 지난해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18∼34세 미국 여성 중 부모나 친척과 같이 사는 비율은 36.4%로 통계를 모으기 시작한 1940년 이후 가장 높고, 젊은 남성이 부모와 동거하는 비율은 무려 42.8%에 이르렀다. 또 유럽은 2011년 기준으로 18∼30세 성인 중 부모와 함께 사는 비율이 전체의 48%에 이른다. 청년 문제가 일찍이 시작된 일본의 경우 ‘나이가 상당히 찬’ 35~44세 연령층 중에서도 기생독신자의 수가 1990년 112만명에서 2010년 295만명으로 크게 늘었다. 6명 가운데 한 명이 부모에게 얹혀사는 것이다.

청년들이 계속해서 부모에게 의지하는 것은 경제적 이유가 가장 크다. 우선 독립을 위한 필수 요소인 부동산 등 자산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경제발전으로 사회에 쌓인 부(富)의 크기가 큰 만큼 자산 가격도 엄청나게 부풀어올랐고, 후발주자인 청년들이 자력으로 이를 감당하기까지는 수십년의 세월이 걸린다. 게다가 그들은 전례 없는 취업난으로 부를 쌓을 기회마저 원천 차단당하고 있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않는 한 독립은 언감생심인 것이다.

청년의 문제는 부모 세대의 문제로까지 전이된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미국 65세 이상 노년층의 학자금 대출 총액은 2005년 28억 달러에서 2013년 182억 달러로 6.5배 증가했다. 자녀의 학비를 대느라 늘어난 것인데, 변제하지 못해 파산하는 경우도 상당수다. 일본에서는 아예 ‘노후 파산’이라는 단어가 최근 사회문제의 중요한 키워드로 떠올랐다. 길어진 수명을 버텨내는 것만도 재앙에 가까운데, 다 큰 자녀까지 업어 키워야 할 판이라 안락한 노후는 꿈도 꾸기 어렵다.

밀린 노후 준비와 자녀 부양 때문에 은퇴할 수 없는 부모 세대와 그들이 은퇴해야만 빈 일자리에 비집고 들어갈 수 있는 자녀 세대. 한정된 일자리를 둘러싼 세대 간 전쟁은 어느 때보다 치열할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도 장년층의 고용률은 증가하고, 청년층의 고용률은 떨어지는 현상이 계속해서 지속되고 있다.

세계 각국이 내놓는 해법은 다양하다. 일자리의 파이를 키우자는 주장이나 임금피크제 등으로 일자리를 나누자는 식의 기존 경제학에 기반한 해법이 있는가 하면, 모든 청년에게 일괄적으로 일정액(청년수당)을 주자거나, 더 나아가 전국민에게 최소한의 생계 유지에 필요한 돈(기본소득)을 지원해주자는 사회주의적 주장도 점차 힘을 얻고 있다. 


paq@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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