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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용미술? 표절?…한국작가, 미국 법정서 가린다
[헤럴드경제=김아미 기자] 세계적인 작가 제프 쿤스도, 리처드 프린스도 패러디와 표절 사이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잇달아 소송을 당했고, 패소했다. 한국작가가 영국의 유명 패션 디자이너를 상대로 건 소송은 어떤 결론이 나게 될까.

한국 사진작가 이명호(경일대학교 사진영상학부 교수)씨가 영국 패션 디자이너 마리 카트란주(Mary Katrantzou)를 상대로 작품 저작권 침해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했다. 재판은 미국 샌프란시스코 연방지방법원에서 열린다. 현대미술의 한 장르로 굳어진 ‘차용미술(Appropriation art)’의 허용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를 묻는 재판이 될 예정이다. 

마리 카트란주가 디자인한 티셔츠와 가방 제품을 온라인 쇼핑몰에서 캡처한 이미지. [사진제공=이명호 작가]

이명호씨와 이씨의 법률대리인인 법무법인 정세의 김형진 국제변호사는 18일 서울 종로구 사간동 한 카페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작가의 작품을 무단 도용한 마리 카트란주를 상대로 미국 샌프란시스코 연방지방법원에서 소송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이씨와 김 변호사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19일 ‘저작권법과 랜험법(Lanham Actㆍ미 연방 상표법)에 근거한 저작권 침해와 부정 경쟁에 대한 소’를 제기했고, 재판은 오는 7월쯤부터 시작될 예정이다. 이씨가 요구한 손해배상 청구액은 200만달러 규모다.

이씨가 무단도용을 주장하는 작품은 2013년 발표한 ‘나무...#3’다. 시화호를 배경으로 나무 뒤에 하얀색 캔버스를 설치한 뒤 촬영했다.

이씨에 따르면 이 작품은 2004년부터 시작한 ‘사진-행위 프로젝트’의 일부로, 2006년 ‘나무 연작’을 중심으로 석사학위청구논문을 발표한 이후 지금까지 연작을 이어오고 있다. 작가의 나무 연작은 2011년 미국의 장폴게티미술관, 2014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사진미술관 등 해외 미술관에서도 전시된 바 있다.

이씨는 “캔버스가 설치됐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라고 말했다. 그는 “무엇을 그릴까라는, 예술의 본질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된 작업으로 실재하는 대상 뒤에 캔버스를 설치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카트란주가 디자인한 상품에 그려진 작품은 하늘의 톤이나 갈대밭이 내 작품과 매우 유사하고, 나뭇가지 모양은 조금씩 다르다”며 “표절을 피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변형한 것 같다”고 주장했다.

작가가 처음으로 작품 도용 여부를 알게 된 것은 1년 전이다. 이씨는 지난해 4월 국립현대미술관의 한 학예사로부터 온라인 쇼핑몰에서 이씨의 작품이 그려진 티셔츠, 가방 등이 판매되고 있다는 전화를 받았다. 이후 국내 유명 편집숍 등에서도 같은 상품이 판매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현재 온라인 쇼핑몰 등에서 관련 상품은 모두 철수됐다. 문제는 얼마만큼의 손해배상이 이뤄질지 여부다. 상품을 판매한 업체 측이 얼마만큼 이익을 봤느냐에 따라 배상액이 결정될 전망이다.

김 변호사는 “현재까지 카트란주 변호인 측은 이명호 작가의 작품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주장도, 표절이 아니라는 주장도 하지 않고 있다”면서 “손해배상 액수를 놓고 합의 요청이 들어온 상태”라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중심 모티브가 아닌 부수적 이미지는 차용미술로 허용된 사례가 있었지만, 카트란주의 상품 이미지는 나무 사진과 배경 등을 봤을 때 이명호 작가 그림에서 모티브를 갖고 온 것이 분명하다”면서 “이번 재판을 통해 현대미술에서 허용되는 차용미술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2013년 발표한 이명호 작가의 ‘Tree...#3’. [사진제공=이명호 작가]

그는 또 “재판 결과에 따라 미술작품 이미지를 가져다 쓰는 머천다이징 산업 전체가 충격을 받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명호 작가는 “이번 사건 이 전에도 스웨덴 의류 브랜드 등에서 내 작품을 표절, 도용했던 사례가 있었다”며 “그동안 시끄럽게 하고 싶지 않아 그냥 넘어갔지만, 이러한 문제가 여러번 반복돼 온 데다, 카트란주의 경우 유명 패션디자이너이기 때문에 이번 재판을 통해 어디까지가 차용이고 표절, 도용인지 선례를 남기고 싶었다”고 소송 배경을 설명했다.

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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