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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공연한 이야기] 욕망 혹은 단죄의 이름, 팜므파탈
문화예술계에서 끊이지 않고 반복되는 소재를 꼽으라면 치명적인 악녀, ‘팜므파탈(Femme fatale)’일 것이다. 화려한 외모와 육감적인 몸매로 남자를 유혹하고 마침내 파멸로 이끄는 여인. 아름답지만 두렵기도 한 여성은 때에 따라 매혹 또는 공포의 대상, 욕망 혹은 단죄의 대상으로 등장해 정반대의 이미지를 갖게 한다.

극과 극의 매력 때문일까. ‘팜므파탈형’ 여성은 그동안 신화, 성경, 문학, 영화 등 다양한 장르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사람들의 관심을 받아왔다. 멀게는 그리스 신화의 ‘사이렌’, 성경의 ‘살로메’부터 가깝게는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과 에밀 졸라의 소설 ‘나나’ 속 주인공, 영화 ‘원초적 본능’의 캐서린(샤론 스톤)과 ‘타짜’의 정마담(김혜수)까지 다양한 인물을 떠올려 볼 수 있다. 

뮤지컬 ‘마타하리’ [사진제공=EMK]

최근 문화계에서 가장 뜨거운 팜므파탈은 마타하리(1876~1917)다. 네덜란드 출신 무희로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와 독일을 오가며 이중 스파이 노릇을 한 혐의로 총살당한 실존 인물이다. 아름다운 외모와 관능적인 춤사위로 유럽의 고위층 남성들을 유혹한 뒤 정보를 캐내서 팔아넘기는 것이 그의 방식이었다.

일생이 한 편의 드라마 같았던 마타하리의 삶은 소설, 영화, 드라마 등을 통해 조명돼왔다. 이번에는 대형 창작뮤지컬로 제작돼 지난달 국내에서 막을 올렸다. 극 속 마타하리는 여신과 요부 사이를 오간다. 대중 앞에서 옷을 벗는 일이 흔하지 않던 시절, 일곱 겹의 베일을 하나씩 벗어던지며 거의 알몸을 드러내는 도발적인 춤을 선보인다. 파리의 ‘물랑루즈’를 대표하는 최고의 스타에게 남자들은 흠뻑 빠져들었고, 그를 ‘여신’ ‘천사’라 부르며 칭송한다.

하지만 그와 함께 마타하리를 따라다니던 수식어는 ‘요부’ ‘창녀’였다.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네덜란드에서 인도네시아로, 다시 유럽으로 온 그는 돈이 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한다. 아버지가 준 마가레타라는 이름도 버리고 나체로 춤을 추면서 손가락질도 받게 되지만, 그의 삶은 그 어느 때보다 주체적이고 자유로워진다. 마타하리는 “목숨을 빼앗기더라도 더 이상 남자들에게 노예처럼 복종하지 않겠다. 내 삶은 내가 결정하겠다”며 의지를 다진다.

독일 심리학자 우테 에어하르트는 “착한 여자는 죽어서 천당에 가지만 나쁜 여자는 살아서 어디든 간다”고 이야기했다. 나쁜 여자의 대표 격인 팜므파탈은 자의식에 눈뜨고 가부장적인 사회 바깥에서 자신만의 길을 당당히 걸어간다. 그동안 남성 중심적 질서 앞에서 순종적이고 정숙한 모습만을 요구받았던 굴레에서 벗어나 자신의 욕망을 마음껏 분출한다.

어쩌면 금기와 통념으로 가득 찬 사회가 팜므파탈을 ‘악녀’처럼 보이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화려한 장식을 한 꺼풀 벗겨내면, 그저 한 인간으로서 세상 앞에 당당하고 자유롭고 싶었던 여인들의 진짜 마음이 보일 것이다.

뉴스컬처=양승희 편집장/yang@newsculture.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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