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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픈 청춘 ‘하얀 거짓말’ 할 입도 들을 귀도 없다
취업난 각박한 현실에 여유 상실
친구에 장난 쳐봤자 무의미 판단


#.대학생 손모(25) 씨는 최근 몇년 간 만우절에 장난 문자도 거의 받아 본 적이 없다. 군 입대 전인 지난 2012년 친한 친구 몇명과 짜고 새내기 후배들에게 “4월1일은 학교 개교기념일이니 양복을 입고 와야 한다”고 거짓말한 게 마지막 만우절 장난이었다. 손 씨는 “가벼운 거짓말로 평소에 하고 싶었던 말을 전하거나 하는 문화는 좋은 것 같지만 요즘은 다들 얼굴 맞대기가 힘든 일상이라 이런 문화가 사라지는 것 같다”며 “그래도 굳이 만우절이 아니더라도 최근엔 평소에 하고 싶은 말을 거리낌하는 분위기라 만우절이 그리 아쉽지는 않다”고 말했다.

4월1일은 만우절. 실없는 농담이나 ‘하얀 거짓말’로 우울한 삶에 활력이 되곤 했던 만우절은 그러나 요즘엔 없다. 각박해진 삶 때문이다. 특히 젊은 청춘들은 선배 세대는 어쨌는지 모르지만, 우리들은 실없는 농담을 할 여유도, 그것을 받아들일 이유도 없다고 말한다. 실종된 만우절이 요즘 시대다. 사진은 만우절 이미지.

4월1일, 장난스런 거짓말을 주고받으며 함께 웃고 즐기는 ‘만우절’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요란한 장난은 오간데 없이 사라지고 그나마 인터넷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거짓말을 주고받는 게 전부가 됐다. 취업난, 실업난 등으로 인해 삭막해진 청춘을 방증하는 단적인 풍경이라는 지적이 적지않다. “만우절을 선배세대들은 만끽했는지 모르지만, 우리 세대는 실없는 농담을 할 여유도, 받아들일 여유도 없다. 우리 삶이 너무 피곤하기 때문”이라는 게 대다수 청춘들의 자조섞인 말이다. 만우절을 둘러싸고 기성세대와 청춘세대들의 미묘한 시각차는 그래서 생긴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직장인 김모(26ㆍ여) 씨에게도 만우절은 특별한 날이 아니다. 이날(1일)이 만우절인지도 몰랐다는 김 씨는 “만우절까지 챙기기엔 내 인생이 바쁘다”며 “대학 와서는 만우절에도 교수랑 상담을 하며 하루를 보냈던 것 같다”고 했다.

이날이 만우절인지 몰랐던 건 대학생 신모(25ㆍ여) 씨도 마찬가지다. 신 씨는 “매년 텔레비전을 보고 만우절을 알았던 것 같다”며 “요즘엔 만우절이라고 장난 치는 사람이 주위에 정말 단 한명도 없다”고 털어놨다.

온ㆍ오프라인상 기업들의 홍보성 이벤트에만 활용될 뿐 정작 청춘들 사이에선 만우절이 사라지는 이유에 대해 청춘들 스스로는 실제 각박한 현실을 꼽았다.

신 씨는 “매일 보고 가깝게 지내는 사람이 있다면 기획을 해서라도 큰 만우절 이벤트를 해주고 싶을텐데, 시간과 마음이 여유로운 사람도 없고 장난을 칠만한 아이디어도 없다”며 “늘 바쁘고 할일이 많아 스트레스를 받는 친구들에게 굳이 전화를 걸어 장난을 쳐봤자 조소도 안 지을 게 뻔하다”고 했다. 이어 신 씨는 “그럴 바에야 유튜브나 페이스북에서 다른 사람들이 장난치는 걸 보며 침대 속에서 혼자 만우절을 즐기겠다”고 덧붙였다.

다소 조소의 시각도 나온다. 취업준비생 이모(27ㆍ여) 씨는 “최근 보도되는 뉴스들만 보면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들에겐 하루하루가 만우절이나 다름없는 느낌”이라며 “자식을 죽이는 부모가 그렇게 많은 거짓말같은 현실에서 만우절까지 즐길 여력이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이같은 상황에 대해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도 “놀이문화라는 건 그만한 (정신적ㆍ물질적) 여력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건데 (청년들의) 현실이 그렇지가 않다”며 “취업난과 실업난, 치열한 경쟁문화와 같은 각박한 현실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박혜림ㆍ구민정 기자/ri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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