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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는, 왜?]동전의 양면, 테러리즘ㆍ트럼프리즘…‘경멸의 정치’가 낳은 극단의 사회
[헤럴드경제=문재연 기자]“국가는 자유의 경제를 제공했지만 미국의 백인 하류층민 스스로가 헤로인, 술, 그리고 불륜에 중독되기를 선택했다. 그들은 죽어 마땅하다”

미국의 대표 보수 저널인 ‘내셔널 리뷰’(National Review)의 데이비드 프렌치가 27일(현지시간) 칼럼에서 쓴 글이다. 그는 미국의 백인 노동계급을 ‘자학적인 공동체’로 규정하면서 “아무도 그들을 소외시키지 않았다”고 했다.

미국 공화당의 시각을 대표한다는 내셔널 리뷰가 그들의 지지기반인 백인 노동자들을 경멸한 것이다. 공화당 주류세력과 반(反) 트럼프 연대라는 철벽방어를 뚫고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경선후보의 군단이 된 백인 노동자들에 대한 질타다. 하지만 이같은 ‘경멸의 정치’는 최근의 일만은 아니다. 
버라이즌 센터 앞에서 한 남성이 ‘트럼프=히틀러’라고 적힌 시위 팻말을 들고 항위시위를 벌이고 있다. [출처=게티이미지]
지난 26일 벨기에 브뤼셀 연쇄폭탄 테러 현장



뿌리 깊은 경멸의 정치는 트럼프리즘의 씨앗이 됐다. 기득권의 부패와 책임 회피를 위해 주류 세력은 백인 노동자들이 가난한 원인이 ‘게으름’에 있다고 질타했고, 경기난과 일자리 부족을 ‘이민자’들의 탓으로 돌렸다. 교육을 받지 못한 백인 노동자 및 중하류층은 당장 자신들과 ‘파이’를 나눠야 하는, 일자리 경쟁상대로 부상한 이민자들을 분노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멕시코인은 간강범”이라는 막말을 일삼는 트럼프를 적극 지지했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이유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소외당한 이민자들 중 분노(?)한 이들은 무슬림 극단주의에 빠져들어 테러를 일으켰다. 고조된 반(反)이슬람감정은 또 다시 테러를 야기하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지는 칼럼을 통해 “(트럼프 열풍은) 단순히 경제정책이 문제가 아니다”며 “공화당은 과거 사회보장제도와 의료보험제도 등 각종 복지혜택을 축소시키고 월스트리트 등 금융계와 자산가의 배만 불린 결과 백인 노동자들의 반감을 사게 됐다”고 분석했다.

실제 미국 경제정책연구소의 고든 라퍼가 2013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6년 대선 출마를 선언했던 스콧 워커 공화당 소속 위스콘신 주지사는 지난 2011년과 2012년 노동자들의 단체교섭권을 제한하는 법안과 최저 임금 기준을 축소했다. 위스콘신 주는 2015년 기준 백인 비율이 87.5%에 달하는 곳으로 67%가 제조ㆍ서비스 등 근로직에 종사하고 있다. 미국 대표 공화당의 텃밭으로 꼽히는 텍사스와 오하이오 주 등 5개 주는 공립교육 지원금을 삭감하고 근로기준을 완화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모두 백인 노동자가 다수를 이루는 주다.

백인 노동자들을 겨냥한 사회 전반의 ‘경멸감’은 만화 ‘심슨 가족’의 ‘호머 심슨’에서도 볼 수 있다. 호머 심슨은 미국 중산층의 가장으로, 심슨이 대표하는 백인 노동자는 무식하고 게으르며, 무책임하다. 미국 베일러 대학교의 다이애나 E. 캔달 사회학과 교수는 저서 ‘계급 프레이밍: 미국 빈부의 대표성’을 통해 “‘심슨 가족’은 백인 노동 계급이 겪는 경제ㆍ정치ㆍ사회문화적 어려움을 ‘개인화’시킨 미국 사회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백인 노동자들의 분노는 정확히 미국 정치세력이 아닌 유색인종 이민자들을 향했다. 국가가 보수와 좋은 일자리가 감소한 이유를 잘못된 경제정책이 아닌 이민자의 탓으로 돌렸기 때문이다. 이는 트럼프가 펼치는 반이민ㆍ반이슬람정책과 일맥상통한다.

문제는 비난의 화살을 경쟁자인 이민자나 유색인종에게 돌리는 백인 중하류층의 극단적인 행보는 또 다른 극단적인 사회현상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최근 들어 유럽이 테러의 중심지가 되고 있는 것도 ‘경멸의 정치’가 낳은 산물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반이민ㆍ반이슬람 정서가 하나된 유럽을 사분오열 나누는 선이 되고 있고, 이것이 피의 악순환을 부르고 있다는 것이다.

유럽연합(EU)의 ‘다문화정책’을 중심으로 한 이민자 유입은 저출산ㆍ고령화를 타개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하지만 과도한 인구 유입은 일자리와 복지 문제를 야기했다. 이 때 유럽 각국의 정부는 책임의 주체를 이민자에 돌렸다. 실제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전 대통령은 지난 2012년 “무슬림 시민들은 프랑스에 왔으면 다른 커뮤니티에 섞여야 한다”며 동화되지 못하는 무슬림 이민자들을 질책하기도 했다.

정책적으로도 프랑스는 2010년부터 이슬람 여성들에게 전신을 가리는 전통 복장인 부르카 착용을 금지시켰다. 스위스도 2009년 국민투표를 통해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에 새로운 첨탑을 새우는 것을 금지시켰다. ‘이슬람 인권위원회’(IHRC)는 지난해 보고서를 통해 약 60%의 영국 무슬림 이민자들이 강화된 안보정책으로 인해 이유없이 경찰의 조사를 받거나 테러리스트로 의심을 받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유럽 정부를 중심으로 암묵적으로 이뤄졌던 ‘경멸의 정치’는 유럽 내 무슬림 극단주의를 양산했다. 프랑스의 파리 테러와 벨기에 브뤼셀 테러를 저지른 범인들은 모두 시리아나 이라크의 중동 분쟁지역 출신 ‘이슬람국가’(IS) 대원이 아니었다. 이들 모두 프랑스와 벨기에, 미국의 시민권을 가진 ‘국민’이었다. 국제급진주의 연구소(ICSR)에 따르면 유럽 국가의 국적을 가진 ‘지하디스트’(이슬람 성전주의자)는 3600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안 부루마 미국 하버드대학교 역사학 교수는 최근 세계 오피니언 리더들의 온라인 토론장인 프로젝트 신디케이트에 서구 엘리트 세력이 취한 계급정치가 오늘날의 ‘분노 사회’를 양산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표성이 떨어지는’ 엘리트 중심의 구식 정치가 국민과 이민자들을 소외시켰다”고 평가했다. 이어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땅바닥으로 떨어졌지만 정계가 대중을 호도하는 감성정치를 펼친다면 결코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munja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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