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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호텔가의 한식(韓食) 홀대와 미슐랭 가이드
[헤럴드경제=함영훈 선임기자] 2016년 이른 봄부터 호텔가와 요식업계가 분주하다. 프랑스 음식ㆍ여행 평가서인 미슐랭 가이드(The Michelin Guide)가 2017년 ‘한국판’ 발간을 위해 조만간 암행 조사를 본격화하기 때문이다.

최근 호텔가에는 미슐랭 별점을 받은 ‘세계적인’ 레스토랑 셰프들의 입국이 부쩍 늘었다. 이들은 표면적으로 호텔 레스토랑의 단발성 프로모션을 위해 입국했지만, 미슐랭 가이드 한국판 발간을 앞두고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 막후에서 자문해줄 가능성도 있다.

주지하다시피 미슐랭 가이드는 자동차 정비차 미슐랭(미쉐린) 타이어점에 머물던 고객들에게 제공하던 여행, 음식 정보지에서 출발했다. 여행객이 이 정보지에 의존하는 경향이 짙어지자 미슐랭측은 좋은 식당과 관광지에 별 한 개에서 세 개 까지 평가를 붙인 다음, 책으로 만들어 유료로 판매하기 시작했다. 116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현존하는 최고 권위의 여행, 음식 평가서이다. 마치 경제계의 무디스, 자동차업계의 컨슈머리포터이다.

여행지는 그린북, 음식은 레드북이다. 여행지 선택에서는 취향이나 변수가 많아 미슐랭가이드에 대한 의존도가 높지 않지만 음식은 레스토랑의 성쇠는 물론 관광지 선택과 나라 이미지에 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세계 많은 음식점이 미슐랭 별을 따는데 적지 않은 공을 들인다.

별을 받은 식당은 전세계 3000곳 안팎이다. 이 중 프랑스가 20% 가량을 차지하는 등 십중팔구는 서방 국가의 레스토랑이고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3~4% 점유한 채 음식 백화점인 중국과 서양 손님이 많은 마카오, 홍콩, 싱가포르가 미미한 비율을 나눠 갖는 형국이다.

서양 중심의 평가라는 말이 나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하지만 일본의 예에 비춰보면 반드시 그렇지 않으며, 최근 동향을 보면 문화적 상대주의 철학을 존중하고 각국 음식문화의 독창성을 과거에 비해 좀 더 반영하는 듯 하다.

음식분야 미슐랭 가이드 한국판 발간은 여행분야 한국판이 발간된 2011년부터 예고된 것인데, 호텔가와 요식업계가 2016년 부터 갑자기 바빠진 데에는 이유가 있다.

조만간 한국에서 활동하게 될 미슐랭 암행 조사관들이 ‘한식(韓食)의 독창성’에 주목할 것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호텔이 그간 등한시했던 한식 챙기기에 나섰던 것이다.

근거는 베낀 요리가 아닌 독창적인 맛을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다는 미슐랭의 오랜 원칙과 한국판 발간을 앞두고 미슐랭측이 ‘한국 음식 문화의 다양성에 주목한다’고 언급한 점이다. 일본의 성공도 이같은 기준에 따른 결과이다.

서울시내 특1급 호텔중 한식당을 운영하는 곳은 절반 미만이다. 그러다보니 부랴부랴 한식을 강화한다고 해도 한식에 집중할 만한 연구개발 매장을 별도로 부활시키기 보다는 뷔페 식당에 한식메뉴를 몇 개 더 늘리는 수준에 그치는 실정이다.

1990년대말 까지만 해도 특급호텔에 서양손님이 많았으니 유명 호텔 한식당의 적자를 견디지 못했다. 총지배인이나 총주방장도 외국인인 호텔이 대다수이다.

하지만 2000년대들어 한식을 즐길 만한 아시아국가들의 방한 러시가 있었음에도 호텔가는 한식을 등한시한 채 서양요리를 더 잘 베끼는데 급급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요즘 동네 대중 마트 푸드코트에 조차 인도, 인도네시아, 베트남 음식이 진출해 한국인에 의해 그 나라 음식이 요리되고 소비자는 마치 우리 음식 처럼 즐겨 먹는 것을 보면 ‘선진국이라는 우리 뭘 했나’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이번 미슐랭 한국판 발행을 계기로 호텔가가 발상의 전환을 하게 된 것은 늦었지만 다행스럽다.

동서고금 어느 부문을 둘러보아도 베낀 것으로 세계 1등을 한 적이 없다. 우리 것은 소중한 것이고, 세계적인 것임은 우리 국력이 커질수록 강하게 입증되고 있다.

미슐랭이 맛만 보지 않고 재료의 수준, 서비스, 가성비, 토털서비스의 일관성과 통일성도 본다고 하니 ‘먹방’ 포퓰리즘에 빠져있던 요식업계의 인식 전환도 기대된다.

아울러 미슐랭의 서양 음식 편향성을 탓할 것이 아니라 우리 것을 보다 세계화하려고 노력하는 것 만이 미슐랭의 태도 변화를 견인할 수 있다는 점도 호텔가와 요식업계가 새기기 바란다.

한식의 국제화 가능성을 개척하는 것이든 ‘한국식 양식’을 개발하는 과정이든 한식에 대한 철저한 연구와 오랜 고객 응대의 결과물이 축적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음식 분야 리더인 호텔가가 이제라도 최고 셰프다운 모습을 보여야 한다. 어려움 속에서도 한식당을 운영하며 한식 세계화를 위해 노력하는 호텔은 몇 안되기에 칭찬받아 마땅하다.

호텔가, 요식업계의 수지 불균형, 상대적 저임금, 음식 연구 개발 여력의 부족 등 경영상의 문제는 ‘한식’과 아무 관련이 없음을 업계 경영진들이 더 잘 알 것이다.

손맛과 미각이 뛰어나고 열정을 가진 한국 셰프들의 선전과 괄목할만한 성과를 기대해본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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