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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급 파괴’ 모두다 성공한 것은 아니다...조직 특성ㆍ문화가 변수
[헤럴드경제=최정호 기자] 20대 후반 신입사원도, 40대 중반 17년차 베테랑도 모두 “매니저”로 불린다. 업무 앞에서 입사년도 차이는 의미가 없다. 팀장이 아니라면 모두가 전문가다.

SK텔레콤이 2006년 도입한 ‘직급파괴’ 인사실험은 이제 도입 10년을 맞이해 실험을 넘어 하나의 고유 문화로 자리매김했다. 사원부터 대리, 과장, 차장, 부장까지 촘촘했던 평사원 직급을 팀장과 매니저로 확 줄여, 조직의 탄력성을 극대화 한 것이다. ‘매니저’라는 호칭은 직위와 연공서열에 상관없이 자신의 업무에 대해 전문지식과 책임을 가진 담당자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제 SK텔레콤 직원들에게는 ‘과장님’, ‘부장님’ 같은 호칭이 더 어색할 정도다.

이 같은 직급 단일화는 생산성 향상과 인력 운영 효율화로 이어진다. SK텔레콤이 경쟁사 보다 2배 많은 연 매출에도 불구하고, 절반에도 못 미치는 인력으로 높은 생산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IT업계 특유의 수평적인 분위기에, 직급 파괴에 따른 빠른 의사결정까지 가능해지면서 생산성 향상이라는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회사의 한 직원은 “이제 선임이라고 후배에게 일을 떠 넘기는 것 같은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며 매니저 호칭 제도 도입이 불러온 기업 문화의 변화를 단적으로 전했다.


[사진=게티이미지]

그리고 이 같은 SK텔레콤의 성공적인 실험은, 이제 네이버와 카카오 같은 IT 업종을 넘어, 포스코와 CJ 등 전통 굴뚝기업들까지 따라하는 하나의 ‘모범 사례’로 자리매김 했다.

하지만 모든 기업에서 ‘직급 파괴’가 성공한 것은 아니다. 같은 통신IT 기업인 KT는 지난 2014년, 직급제로 복귀했다. “경쟁 기업이라도 좋은 것은 배운다”며 과감하게 도입했던 매니저 제도에 대해 5년만에 ‘실패’를 인정하고, 다시 사원과 대리, 과장, 차장, 부장의 5단계 체계로 돌아간 것이다. KT는 “직원들의 사기진작과 자부심을 고취해 열심히 일 할 수 있는 사내 분위기를 만들고자, 직급승진제도를 재도입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업계에서는 KT가 형식적으로 직급 파괴에는 성공했지만, 직급 파괴의 핵심인 수평적인 사내 문화 정착에는 실패한 결과로 해석했다. 해방 전부터 우편과 통신을 담당하던 공공기관으로 출발해, 2000년대 초반까지 공공기관 지위를 유지했던 뿌리깊은 ‘관료 문화’의 근본적인 변화 없이, 외형만 바꿨던 부작용이다. 또 계속된 구조조정에도 아직도 계열사 포함 8만 여명이 일하고 있는 KT의 거대한 조직의 관성도 ‘매니저’라는 180도 다른 문화의 빠른 정착에 큰 걸림돌로 작용했다.

회사 한 관계자는 “매니저 제도 도입에도 업무 소통에 있어 연차와 직급을 무시할 수 없었다”며 “명함에 세겨진 매니저 호칭과 달리 내부적으로는 계속 예전 직급으로 상호 호칭하고, 심지어 업무에서도 그 차이는 이어졌다”고 복귀 배경을 전했다. 직급 파괴에도 일선 사업소의 10년차 과장급과, 입사 2년차 본사의 담당자 간 수평적인 업무 협업에 대한 고참들의 거부감은 심했고, 결국 사소한 협업을 위해서도 급에 맞는 직원들을 찾아 내세워야 하는 비효율이 계속되자, 결국 5년만에 옛 조직 구조로 되돌아간 것이다. 



choij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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