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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슈퍼리치]내일은 슈퍼리치(26) 빈민촌 참사 막을 ‘8달러 기적’ 이룬 아프리카 청년
-아프리카서 나고 자란 ‘글럭맨’, 벤처기업 ‘룸카니’ 세워 빈민 구제
-8달러짜리 스마트 화재경보기, 빈민촌 대형참사 막을 구세주 부상
-200만달러 모금한 룸카니, 전세계 빈민가에 화재경보기 보급 예정

[헤럴드경제=슈퍼리치팀 민상식ㆍ윤현종 기자] “지난해는 역대 가장 더운 해로 기록됐다. ‘레버넌트’를 찍을 때 눈을 찾기 위해 남극 가까이로 가야할 정도였다. 기후 변화는 현실이다.”

최근 영화 ‘레버넌트’로 인생 첫 오스카상을 거머쥔 할리우드 배우 리어나도 디캐프리오(Leonardo DiCaprioㆍ40)가 수상소감으로 건넨 말이다.

디캐프리오의 발언은 과장이 아니다. 요즘 기후 변화로 인해 전 세계가 극심한 가뭄 등 재난을 겪고 있으며, 특히 빈곤 국가와 빈민층의 피해가 더욱 심각해졌다. 유엔 재난위기사무소(UNISDR)에 따르면 가뭄, 홍수 등 기후변화로 인한 재난으로 사망한 사람들 중 89%가 빈곤국에서 발생했다.

가뭄지역의 빈민층의 경우에는 화재의 위험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돼 있다는 게 시급한 과제다.

불에 타기 쉬운 나무로 지어진 판잣집이 빼곡하게 밀집된 빈민가에서는 한번 화재가 일어나면 대형참사로 이어진다. 이웃집에 불이 났는데도 이를 늦게 알아채 목숨을 잃은 일도 허다하다. 실제 최근에도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 아시아의 빈민가에서 대형화재가 발생해 많은 인명피해가 났다. 

아프리카 스타트업 룸카니 공동창업자 데이비드 글럭맨(28)

아프리카에서 태어나 이같은 저개발국의 참혹한 현실을 마주한 한 청년은 안락한 삶을 버리고, 빈민을 위한 기술개발에 나섰다.

‘적정기술’(Appropriate technology) 기반의 벤처기업 ‘룸카니’(Lumkani)는 이렇게 탄생했다. 적정기술은 저개발국의 지역 문제를 해결하는데 필요한 맞춤 기술이라는 뜻이다.

룸카니는 집안에서 요리를 하는 빈민가의 화재경보기에서 필요한 기술은 ‘연기’가 아닌 ‘온도변화’라는 점에 착안해, 빈민가에 맞는 스마트 화재경보기를 개발해 보급하고 있다.

28세의 청년 데이비드 글럭맨(David Gluckman)이 친구 5명과 공동 설립한 룸카니는 창업한 지 채 2년도 지나지 않았지만, 벌써 여러 신생 벤처기업(스타트업) 대회에서 우승하는 등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스마트 화재경보기 룸카니

▶8세때 노점 시작한 남아공 청년=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태어난 데이비드 글럭맨의 가정은 형편이 그다지 좋지 못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해야 했다. 글럭맨은 한 인터뷰에서 “1996년 당시 8세의 나이에 시장 노점에서 장사를 한 게 사업가로서의 첫 시작”이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학업성적이 좋아 남아공 명문대인 케이프타운대학교에 입학한 그는 경제학을 전공하면서, 대학 졸업 후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하겠다는 결심도 했다. 이는 그가 어린 시절부터 아프리카의 헐벗고 굶주린 흑인들을 보면서, 늘 불평등한 사회에 대한 고민을 한 것이 계기가 됐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2011년 남아공의 4대 은행인 퍼스트 내셔널뱅크(FNB)와 2012년 글로벌 자문사 언스트앤영(EY)의 컨설턴트로 근무하면서 경험을 쌓았다. 2년간의 사회생활을 하다 그는 돌연 사직서를 내고 케이프타운으로 돌아왔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룸카니 화재경보 시스템과 룸카니 설치 모습

▶세상을 바꾸는 법 ‘조심하세요’=글럭맨은 이후 자신과 뜻이 맞는 친구 5명을 모아, 세상을 바꾸기 위해 어떤 일을 해야할지 고민을 하다가 한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화재경보기’였다. 글럭맨과 그의 친구들은 매년 아프리카 빈민촌에서 발생한 작은 불이 급속히 번져, 주변 수천명의 사람들이 피해를 입는 것을 보고 화재피해를 줄일 방법을 고안하기로 했다.

문제는 빈민가의 상황과는 어울리는 않는 기존의 화재 경보기에 있었다. 집안에서 나무나 석유를 때며 요리를 하는 빈민들에게 연기를 인식해 화재를 알리는 경보기는 적합하지 않고 가격도 비쌌다.

이에 글럭맨은 연기가 아닌 방의 온도변화를 인식해 경보기가 작동되는 방식을 구상한다.

그는 이후 값싸고 사용하기 쉬운 스마트 화재경보기를 만들어, 2014년 11월 룸카니를 공동 창업했다. 화재경보기의 이름도 회사명과 같은 룸카니로 정했다. 룸카니는 남아공 공용어 중 하나인 코사어로 ‘조심하세요’란 의미다.


▶8달러의 기적=‘룸카니’는 빈민층의 생활에 맞춘 저비용ㆍ고효율의 스마트 화재경보기다.

화재를 진압하는 기기는 아니다. 이웃집에서 불이 난 것도 모른 채 피해를 입는 사람을 막기 위해, 조기 경보를 울려 목숨을 구하는 스마트 기기다.

룸카니는 손바닥 크기의 네모 박스 모양으로, 본체는 방열 처리된 플라스틱으로 제작했다. 사용법은 간단하다. 룸카니 경보기를 주방에서 멀리 떨어진 집안 높은 곳에 달면 끝이다.

룸카니는 짧은 시간에 온도가 급상승하면, 내장된 센서가 이를 불이 난 것으로 인식하고 곧바로 경보를 울린다.

이후 반경 60m 범위에 있는 또 다른 경보기에 라디오 주파수(RF)를 통한 무선 신호를 보내 경보를 울리는 방식으로 화재 발생을 알린다.

룸카니는 특히 화재 정보를 담은 문자메시지도 마을 주민에게 전송하고, 화재 장소의 위성항법장치(GPS) 위치 정보도 인근 소방기관에 전한다.

이처럼 첨단 센서와 GPS 칩셋, 경보용 스피커가 내장된 룸카니 경보기의 한 개당 가격은 8달러, 우리 돈으로 9700원에 불과하다. 약 1만원짜리 스마트기기 몇 개로 수천명의 목숨을 살릴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든 것이다.

전력 소비량도 적어 AA 건전지 하나로 최대 2년을 사용할 수 있다.

룸카니는 지금까지 투자 및 기부받은 금액을 통해 남아프리카 10여개 마을, 3500가구에 룸카니를 무상으로 보급했다.

강연 중인 룸카니 공동창업자 글럭맨 [게티이미지]

▶전세계 빈민가로 확대=벤처의 불모지로 여겨진 아프리카에서 탄생한 룸카니는 빈민을 구제하겠다는 설립취지와 뛰어난 기술력으로 전 세계 벤처업계에서 잇달아 러브콜을 받고 있다.

벌써 여러 자선재단 및 스타트업 어워즈에서 10개의 상을 받았다.

지난해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시버스리갈(Chivas Regal) 스타트업 대회와 남아공에서 열린 국제 투자 경진대회 ‘시드스타 월드’(Seedstars World)에서 우승하기도 했다. 이 대회는 스위스에 본사로 둔 글로벌 벤처 양성 기관 ‘시드스타’가 각국을 순회하며 개최하는 대회다.

룸카니는 이런 벤처 대회 우승상금과 투자금 등을 바탕으로 지금까지 총 200만달러 이상의 자금을 유치했다.

지난 한해 동안 아프리카 빈민가 수천가구에 스마트 화재경보기를 설치하고, 충분한 사업자금을 모은 룸카니의 시선은 이미 전 세계로 향해있다.

올해부터는 인도와 파키스탄, 브라질 등 전 세계 빈민가 수십만 가구에 룸카니의 경보기 설치를 확대할 계획이다.

특히 룸카니 화재경보기는 빈민촌 외에도 주택과 아파트가 빼곡하게 들어찬 도시 지역에서도 활용이 가능해, 성장가능성이 높다는 게 벤처전문가들의 평가다.

룸카니의 공동 설립자 글럭맨은 최근에는 더 많은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스타트업 대상의 강연에 나서고 유튜브에 홍보영상을 올리는 등 갖은 노력을 하는 중이다. 룸카니 경보기를 많이 팔아 슈퍼리치가 되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회사를 알리고 키워 더 많은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다.

그는 오늘도 “우리와 함께 하면 전 세계 빈민가의 생명을 한 명 더 구할 수 있다”고 말하며 룸카니를 알리는 중이다.

mss@heraldcorp.com
그래픽. 이해나 인턴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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