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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에서]‘한순간 훅간다’는 새누리, 집권여당 ‘간판의 품격’
[헤럴드경제=이형석 기자] ‘정신차리자, 한순간 훅간다’. 29일 새누리당의 국회 대표최고위원 회의실 배경판(백보드)에 커다랗게 새겨진 글귀다.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선 김무성 대표와 서청원 최고위원이 이 배경판과 함께 카메라 세례를 받았다. 배경판엔 “알바를 해도 그리하면 바로 잘려요.” “생각 좀 하고 말하세요.” “갑은 국민이요, 을은 너희로다” “이렇게 하다가는 총선 때 역전패 당한다” “국민말 좀 들어라” 등의 메시지도 작은 글씨로 빽빽하게 써 있었다.

이날 새로 바뀐 배경판은 조동원 새누리당 홍보기획본부장이 내놓은 것이다. 조 홍보본부장은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를 “쓴소리 백보드”라고 지칭하며 “새누리당의 페이스북을 통해 공모했다”고 밝혔다. 5백여개의 댓글 중 격려성 목소리 다 빼고, “아픈 소리 중에 가장 아픈 소리 23개를 최종 선정했다”고 말했다. 조 홍보본부장은 그 중에서도 “‘정신차리자 한순간 훅간다’가 가장 인상에 남았다”고 했다.

국민들이 보내는 쓴소리를 ‘날것 그대로’ 듣자는 취지일 것이다. 잊지 않고 마음에 새기겠다는 각오의 표현일 것이다. 국가의 경제와 국민의 안위가 위기에 처했는데, 비박이니 친박이니 살생부니 다툼이나 하고 있는 때이냐는 자성을담은 말일 것이다. 그래도 뭔가 께림칙하다. 


[사진=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일단 집권여당이 내건 ‘간판의 품격’이 마음이 걸린다. 국민의 목소리에서 듣고 발췌한 것일 지라도, 그 글이 씌여진 자리가 새누리당의 ‘(뒷)간판’인 이상, 그것은 곧 집권여당의 ‘언어’가 된다. 그런데 ‘한순간 훅간다’는, 통속적인 표현, 곧 ‘비속어’에 가깝다. 꼭 ‘나쁜 말’이라는 뜻이 아니다. 주로 흉허물 없는 사이에 가볍게 쓸 수 있는 말이라는 뜻이다. 격있고 공식적인 자리에서 동원할 수 있는 문구는 아니다. ‘댓글’로는 쓸 수 있지만, ‘간판’으로 오르기엔 적당하지 않은 말이다. 더구나 집권여당의 간판으로는 말이다.

더 큰 문제는 누구보고 들으라고 하는 말인지, 말이 갈길을 잃었다는 것이다. 국민들의 쓴소리를 듣고 잘못된 정치를뉘우치겠다면“반성하겠습니다”나 “정신차리겠습니다”라고 해야지 국민들이 비판과 야유를 섞어 댓글로 던진 쓴소리를 그대로 옮겨 적는다고 될 일이 아니다. 국민들이 왜 ‘막말’에 가까운 쓴소리를 던졌는지 거듭 거듭 생각하고 마음에 새겨야지 그것을 커다랗게 간판에 내건다고 될 일이 아니다. 말의 진의보다 자극적인 표현에 골몰할 때 그 언사는 ‘진정성’보다는 ‘선정성’과 ‘홍보효과’를 노린 것은 아닌지 의심받을 수 밖에 없다.

그 나라 정치인의 수준은 국민의 수준을 반영할 뿐 아니라 대표한다. ‘정신차리자, 한순간 훅간다’는 글로 새누리당에 경종을 울리고자 했던 이의 진의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정신차리십시요, 국민이 심판할 것입니다’라는 말을 ‘댓글체’로 표현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가 과연 적나라한 표현 그대로를 ‘전시’ 하길 바란 것이었을까. 무덤을 개울가에 만들어달라는 어미개구리의 말뜻을 못 알아들은 청개구리아들이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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