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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에서] 남보다 못한 ‘이웃사촌’
지난 20일 서울 은평구 한 주택가의 지하층에 거주하는 박모 씨는 짧은 외출 후 돌아오는 길에 자신의 집 현관문과 건물 벽에서 A4 용지 크기의 전단지를 발견했다. ‘집, 오토바이, 차 번호 다 아니까 조심해라’, ‘죽여버린다’, ‘보복할 것’, ‘두 XX을 죽여버린다. 몇 배로 보복하겠다’, ‘짐승 같은 XX들’ 등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 전단지는 박씨 집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박씨 집 맞은편 건물 벽에도 ‘집 주인이 주변에 쓰레기를 버리고 담벼락도 허물고 차에 흠집도 냈다. 지하층에 살고 있는 XX들을 보면 혼쭐을 내달라’ 등의 협박문이 붙었다. 서울 은평경찰서의 수사 결과 동네 주민인 A씨가 용의자였다. A씨는 박씨가 자신의 집 앞에 쓰레기를 버리고 차량까지 흠집 냈다고 오해, 홧김에 전단지를 붙였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이웃끼리 사소한 오해가 자칫 큰 사건으로 비화될뻔했다. 경찰은 A씨를 협박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과거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있었다. 서로 이웃에 살다 정이 들어 사촌 형제 수준으로, 오히려 더 가까워진 이웃을 말한다. 1980년대 ‘한지붕 세가족’이나 올해 초 끝난 ‘응답하라 1988’같은 드라마를 보면 이 같은 이웃사촌들의 모습이 정겹게 느껴진다. 드라마 속 인물들은 맛있는 음식을 해 서로 나눠 먹고, 돈, 자식 등 서로의 걱정거리를 나누었다. 자녀들끼리도 마치 친형제처럼 놀며 혈육만큼 진한 우애를 나눴다.

하지만 이 같은 미풍양속은 보기 드물게 된 지 오래다. 아파트, 빌라 등 공동주택이 늘어나면서 각 세대를 가르는 현관문은 서로의 장벽 역할을 하는 두꺼운 철문이 돼 버렸다. 범죄, 사고가 잇따르며 각박해진 사회도 이웃 간 소통을 가로막고 있다. 사실 이 사건은 해프닝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사소한 다툼이 살인까지 이어진 적도 있다. 2013년 설 연휴에는 서울 중랑구의 부모 집을 찾은 한 형제가 ”시끄럽다“며 항의하는 아래층 주민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지는 사건까지 일어났다.

이 사건을 수사한 한 경찰 관계자는 “이웃 간 대화로 충분히 분쟁을 해결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소통의 부재로 생긴 문제”라고 말했다. 그의 말이 유난히 더 안타깝게 들렸다. 

realbighead@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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