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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수근 전작도록에 ‘빨래터’ 실릴까
[헤럴드경제=김아미 기자] 미술평론가들이 쓰는 말 중 ‘동일 도상의 반복’이라는 게 있다. 한 화가가 같은 그림을 여러 개 그릴 수 있다는 뜻이다. 미술품 위작 논란이 불거질 때 흔히 등장하는 용어이기도 하다.

문화체육관광부(장관 김종덕ㆍ문체부)가 현재 이중섭ㆍ박수근 전작도록을 추진 중이다. 전작도록이란 한 작가의 모든 작품을 총망라한 자료다. 연대, 크기, 상태, 이력, 소장처 변동, 비평, 전시 기록 등이 모두 기록돼 있기 때문에, 해당 작가의 작품 감정시 참고 자료로 활용된다. 즉, 전작도록에 실리면 ’진품‘의 가치를 인정받게 된다는 얘기다.

서양화가 박수근(1914-1965)의 대표작이자 여전히 진위 논란이 불분명한 ‘빨래터’라는 작품이 있다. 박수근의 빨래터 유화 작품은 진위 논란이 있는 작품까지 포함해 현재까지 총 4점으로 알려져 있다. 이 중 여섯 명의 여인이 시냇가에 모두 ‘앉아서’ 빨래를 하고 있는 모습을 그린 그림, 즉 동일 도상이 반복된 그림은 3점이다.

2008년 봄 계간지 ‘미술평단’에서 김인아(한국미술품감정협회 실장) 씨는 “지금까지 알려진 박수근 빨래터 유화는 총 3점”이라며 “시공사 도록에 수록돼 있는 ‘빨래터(1950년대 후반)’, 열화당 도록에 수록돼 있는 빨래터(1954년작), 그리고 열화당 작품해설 참고도판 6에 수록돼 있는 ‘빨래터(1954, 소재불명)’”라고 소개했다.

이 중 앉아서 빨래하는 여섯 명의 여인을 그린 게 시공사 도록에 있는 빨래터와 열화당 참고도판에 있는 빨래터다. 김 씨가 언급한 세 작품 중 나머지 한 작품은 맨 왼쪽 한 여인이 서 있으니, 동일 도상이 반복된 ‘빨래터’를 언급할 때는 제외된다. 

열화당(1985년 출판) 작품해설 참고도판 6에 수록된 박수근의 빨래터. ‘1958년 소재불명’으로 기재돼 있다.

그렇다면 동일 도상이 반복된 3점 중 나머지 1점은?

2007년 서울옥션 경매에 나왔다가 법정 소송까지 갔던 ‘빨래터’다. 역시 여섯 명의 여인이 앉아서 빨래를 하고 있는 그림이다. <2월 24일자 본지 온라인판 보도 ‘‘위작’의 악몽…미술계가 떨고 있다’ 참고>

빨래터가 수록돼 있는 시공사(1995년 출판) 도록과 열화당(1985년 출판) 도록을 다시 살펴보니 조금 다른 점이 발견됐다. 김 씨가 미술평단에서 ‘1954년작 소재불명’이라고 언급한 열화당 참고도판 빨래터가 정작 이 참고도판에는 ‘1958년 소재불명’으로 적혀 있었다.

당시 김 씨는 서울옥션 소송 과정에서 감정위원으로 참여, 검찰 측에 ‘감정보고서’를 제출한 바 있다. 그리고 김 씨가 2008년 봄 미술평단에 썼던 글은 같은 해 7월 검찰에 제출한 감정보고서에도 그대로 인용됐다. 다음과 같다.

“소재불명으로 알려져 있던 열화당 도록에 수록된 참고도판 작품을 확인한 결과, 색상과 마티에르가 매우 유사했다. 그 작품의 제작연대가 1954년인 것으로 보아 소장경위에 의해 제작연도를 1954년~1956년으로 추정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제작연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근거라 할 수 있다.”

당시 서울옥션은 문제가 됐던 ‘빨래터’ 작품이 경매에 나오기 전 원소장자인 존 릭스가 1954~1956년 한국에서 근무하며 박수근 화백으로부터 직접 받았던 진품이라고 주장했다.

감정보고서는 이 작품과 “색상과 마티에르가 매우 유사하다”며 열화당 참고도판 작품을 비교했다. 그리고 열화당 참고도판 작품이 1954년 제작됐으므로, 이와 유사한 화풍의 그림인 서울옥션 빨래터 역시 같은 시기 존 릭스가 박 화백으로부터 받은 것이라는 논리를 폈다.

그렇다면 김 씨는 왜 열화당 참고도판에는 1958년이라고 돼 있는 작품을 감정보고서와 미술평단 논문에 1954년이라고 기재했을까.

최근 김 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감정보고서에 연도가 오ㆍ표기 돼 있는 건 맞다. 그런데 이것이 재판 결과와 어떻게 직접적인 영향이 있는지 모르겠다”며 “열화당 도록에 1958년 작품이라고 된 게 잘못된 것 같고, 제 (미술평단) 글에도 연도미상인데 1954년으로 표기가 돼 있다”고 말했다.

사실은 연도미상 작품인데 열화당 도록 표기가 잘못된 것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연도미상 작품을 김 씨는 자신의 글과 감정보고서에 1954년작이라고 표기한 게 된다.

소송 당시 감정위원단에 참여했던 또 다른 미술계 인사에게 이 사실을 확인하자 “열화당 도록이 맞다는 건 어떻게 확신할 수 있나”라는 답이 돌아왔다. 도록에도 잘못 표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시공사와 열화당, 두 권의 도록 모두 국립현대미술관장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던 오광수 씨가 집필에 참여했다.

오광수 씨와 김인아 씨 모두 현재 정부 전작도록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오광수 씨는 이 사업 추진위원회 위원장을, 김인아씨는 박수근 연구팀 연구원을 맡고 있다.

문체부에 따르면 향후 3년 동안 데이터를 리서치하고 수집한 뒤 전작도록을 만들어 디지털 출판할 예정이다. 온라인에 먼저 띄워 여론의 검증을 받아 오류를 수정한 후 인쇄물로 출판한다는 것. 온라인 버전에는 진위 논란이 있는 작품도 ‘진위 논란 있음’이라는 표기 하에 함께 게재될 예정이다.

박수근 전작도록에 ‘빨래터’ 유화는 몇 점이 실리게 될까. “오류가 있다” 지적받는 기존 도록의 정보들은 이 전작도록에 어떻게 반영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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