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와 합의를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여기는 꿋꿋한 태도에 박수를 보내던 이들도 돌연 ‘굴종(屈從)’의 표상으로 그를 지목했다.
지난 23일 시대의 ‘의회주의자(정의화 국회의장)’는 그렇게 야권의 ‘주적(主敵)’이 됐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정치는 처음부터 그런 것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뜻을 함께하는 이들이 모여 신념을 지키고 관철하고자 노력하는 것이 정치다.
야권이 자신들의 신념에 어긋나는 법안을 ‘직권상정’ 한 입법부 수장을 원수처럼 대하는 것은 그저 이치(理致)다.
그래도 “국회의장마저 박근혜 정권의 휘하에 들어갔다”는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의 말은 따가울 법했다.
일찌감치 시작됐던 여당의 쟁점법안 직권상정을 요구를 갖은 모욕 속에서도 거절했던 정 의장이다.
범인(凡人)이라면 서운하고 또 서운해 피눈물이 났을 터다.
그러나 정 의장은 ‘쓸개’를 씹는 대신(와신상담ㆍ쓸개를 맛보며 복수를 다짐함) ‘의회주의’를 되새겼다.
“(필리버스터를 보며) 많은 것을 배우고 많은 것을 느끼고 있다. 우리가 선진 의회민주주의 국가로 발전하는 데 좋은 경험이 될 것이며, 국민에게 반대 의견을 자세히 전달해 서로의 의견을 합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25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난 그의 한 마디는 그래서 묵직했다.
대한민국이 민주주의 국가임을 증명하는 ‘역사적 장면’의 한쪽 편에서, 조용히 흘러나온 오늘의 결정적 한마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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