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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더스카페] 미술가란 도대체 어떤 종족일까?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 “예술은 사기다”고 말한 백남준급 이상의 도발적 선언을 한 작가를 꼽자면 뒤샹을 들 만하다. 뒤샹은 변기를 작품이라고 우겼다. 그래서 사람들은 미술관에 모셔진 변기를 감상하기 시작했다. 이는 작가의 자기확신과 딜러와 화랑, 평론가로 구성된 미술 시스템의 보증이 있어야 가능하다.

내로라 하는 화가들의 미술작품을 놓고 소설같은 얘기들이 지금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다. 작가가 자기 그림을 가짜라고 말했는데 미술관은 진짜라고 우긴다. 또 한 작가는 가짜가 떠돌아다니지만 손을 놓고 있다. 일반인들은 새삼 미술가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진다.

예술사회학자이자 ‘이코노미스트’ 현대미술 수석 기고가인 세라 손튼은 ‘예술가의 뒷모습’(세미콜론)에서 ”미술가가 된다는 것은 그저 직업이 아니다. 그것은 갖은 애를 써서 얻은 정체성, 시간과 함께 쌓아올린 평판, 진정성과 연계된 독특한 사회적 위상“이라고 말한다. 현대작가는 작업실에 틀어박혀 고독과 씨름하며 고상하게 작품 창작에만 매달리는 낭만적인 예술가상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저자는 제프 쿤스, 아이웨이웨이, 데미안 허스트, 쿠사마 야요이, 신디 셔먼 등 우리 시대 스타작가 33명을 만나 ‘미술가란 무엇인가’란 질문을 던졌다. 책에는 이들이 자신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 미술계와 어떻게 소통하고 있는지 그 내밀한 속을 보여준다. 

예술가의 뒷모습/세라 손튼 지음, 배수희 옮김/세미콜론

책은 연극적 구성을 차용해 정치, 친족, 숙련작업이라는 표제로 3막으로 구성했다. 이는 인류학에서나 볼 수 있는 표제다. 저자는 이런 접근을 통해 현대미술가와 미술을 다른 시선으로 보려한 듯하다.

1막 ‘정치’에서는 인권과 표현의 자유를 중심에 두고 미술가의 윤리, 권력, 책임감에 대한 미술가의 태도를 탐색한다. 특히 레디메이드를 사용하면서 미디어의 주목을 받고 있는 쿤스와 아이웨이웨이의 권력과 정치에 대한 태도를 비교한 게 흥미롭다.

2막 ’친족‘에는 팀워크를 취하거나 가족처럼 작업실을 운영하는 작가들을 통해 경쟁과 협업, 동료와 뮤즈, 후원자와 관계맺는 방식을 보여준다.

이런 독특한 배열 못지않게 관심을 끄는 대목은 심층인터뷰를 통해 저자가 드러내고자 하는 미술가의 정체성이다.

예를 들어 세계적인 갑부 반열에 오른 제프 쿤스는 작품 시장에 관한 말은 일체 하지 않는다. 상업적이라거나 돈 때문에 작업한다는 비난을 의식해서다. 저자의 집요한 질문에도 쿤스는 그저 “성공하는 건 별 생각이 없지만 욕망에는 정말 관심이 많다”는 식이다. 자신의 작품 시장에 대해서도 “저를 진지하게 작업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한다. 그래도 쿤스는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무대가 많으면 많을 수록 좋다”고 말한다.

저자는 쿤스의 작업실에서 본 그의 신작도 소개했다. 여성의 하체를 사실적으로 그린 쿠르베의 ‘세계의 기원’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얼마 전 난민들의 구명조끼 1만4000여벌로 독일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기둥을 뒤덮은 설치미술을 선보인 중국 반체제 예술가 아이웨이웨이의 날것 그대로의 얘기도 들어있다.

문화혁명 시절, 화가이자 시인이었던 아버지의 추방과 지하 구덩이 속에서의 생활을 따뜻하게 회고한 아이웨이웨이는 미술가를 “보편적 감성의 적”이라고 규정한다. 보편성 속에 들어있는 무지와 악에 대한 그 식의 표현이다.

형광색과 반복적인 도트무늬로 유명한 세계적인 팝아트 작가 쿠사마 야요이에게 그림은 그가 사는 길이다. 미술제작만이 자살충동을 막아주기 떄문이다.쿠사마의 유명한 호박회화는 바로 환각 끝에 나온 것. 거의 매일 밤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는 쿠사마가 테이트 모던 미술관 회고전을 위해 18개월동안 무려 140개의 작품을 작업한 건 삶과 죽음의 폭발적 에너지의 발산이라 할 만하다. 작가는 쿠사마가 단기 만병통치약으로 즐기는 또 다른 마약이 자신을 향한 세상의 관심, 미디어라는 사실도 들려준다.

이 책에 소개된 작가의 벌거벗은 초상화 중 주목할 만한 작가는 데미안 허스트. 저자가 바로 ‘허스트에게 손들기:영국 미술의 악동이 투자자들에게 손해를 끼치면서 부자로 성장한 방법’을 쓴 데미안 저격수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데미안 허스트를 ‘항상 교묘한 사람’ ‘여러 의미에서 수완이 좋은 사람’으로 평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일화들이 저자의 글 곳곳에 드러난다. 가령 쿤스의 ‘매달린 하트’가 2007년 11월 2360만달러에 판매돼 허스트를 제치며 최고가를 경신하자 이후 허스트는 쿤스를 늘 의식한다. “한가할 때 속으로 그 사람은 뭐할까” “내가 한 게 더 괜찮았으면 좋겠다”며, 경쟁의식을 내비친 것이다. 그런데 2013년 도하에서 열린 대규모 허스트 회고전을 찾은 쿤스와 열정적으로 대화를 마친 허스트의 말은 가관이다. “제가 이야기하던 미술가가 누구였죠?”

책은 저자가 만난 미술가의 표정과 행동을 카메라처럼 담아내 마치 그들과 마주한 듯한 느낌을 준다. 그 앵글을 통해 우리는 작가의 내면으로 한 발짝 더 들어갈 수 있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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