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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7년만 방송대 졸업한 시각장애인 이희준 씨 “그는 내 인생의 나침반이자 ‘흰 지팡이’”
아버지 뻘 멘토 최근옥 씨, 전주-익산 오가며 멘토 역할



[헤럴드경제=원호연기자]“때로는 참혹한 절망에 몸을 꺾고 흔들리는 당신, 그래도 살아 보려고 처절한 절규의 손수건을 흔든다.”

지난 1989년 방송통신대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했던 이희준(55ㆍ사진 오른쪽)씨는 27년만에 졸업장을 받아들었다. 후천적인 병으로 시력을 잃은 이 씨가 시로 풀어낸 삶은 표현 그대로 ‘절규의 손수건’이었다. 앞도 보이지 않는 그가 학업을 마치는 데는 함께 졸업장을 받아든 최근옥(77ㆍ사진 왼쪽) 씨의 존재가 결정적이었다.

돈이 없어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1984년도 6월에 해군에 들어간 이씨는 시인을 꿈꾸던 문학 소년이었다. 배움을 통해 꿈을 이루겠다는 의지는 1989년 방송대 국어국문학과 입학으로 이어졌지만 해군 생활과 학업을 병행하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었다.

1995년에 갑자기 찾아온 병마는 이 씨의 삶과 학업을 어둠 속에 빠뜨렸다. 갑자기 찾아온 베케트병과 녹내장으로 1년을 투병하다가 시력을 잃었다. 아내마저 아이들을 둔 채 이씨의 곁을 떠나갔다.


“그 뒤 2~3년은 공황상태로 지냈다”는 이 씨가 학업을 다시 시작한 것은 2010년. 아동작가이자 시인인 원광출판사 장재훈 편집장의 권유로 자신의 울분을 시로 풀어내던 그는 “무언가 시작하지 않으면 혼란을 견뎌낼 수 없었다”고 회상한다.

시각장애인으로서 학업을 이어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보이지 않으니 학교 가는 게 일이다. 시각 장애인용 교재는 학기가 다 끝난 뒤에나 음성파일로 완성되기도 했다.

이 씨에게 최씨가 등장한 것은 지난 2014년 교양수업이었다. 자신에게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발표하는 이날 수업에서 이씨는 자신의 삶의 여정을 담담하게 풀어냈다. “외롭고 몸부림 치는 자신을 위로하려면 스스로의 위치를 잘 알아야 하는데 공부는 인생의 나침반이 됐다”는 그의 말에 전직 교사였던 최근옥씨는 자신이 이씨의 멘토가 되기로 ‘작심’ 했다.

최 씨는 “내가 이씨를 위해 한 일은 그저 책을 읽어주고, 소설가가 되고 싶어하는 이 씨에게 ‘방송대 문학상 현상공모’ 등 행사가 열리면 알려주는 정도였다”며 겸손해 했다. 그러나 최씨 사는 곳은 전주. 이씨가 사는 전북 익산까지의 거리를 생각하면 자신의 생활을 이씨에게 내어준 것이었다.

최씨는 이씨의 졸업 논문을 위해 스스로 문학공부를 했다. 공지영 작가의 작품에 나타난 ’한(恨)‘을 논문의 주제로 삼겠다는 이 씨를 위해 최 씨는 공 씨의 대표작들을 스스로 분석해 이 씨에게 조언을 건넸다. 그런 최씨에 대해 이씨는 “나의 아버지”라고 부른다.

이 씨는 이날 졸업식이 남은 삶의 시작이라는 의미에서 자신의 새로운 생일로 삼기로 했다. “나를 찾은 날, 날 위로하는 법을 배웠고 자존감과 자신감을 채운 날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무사히 학사모를 쓴 이 씨를 보며 최씨는 “내가 이 씨의 ‘흰 지팡이’가 될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흰 지팡이’는 시각 장애인들이 세상에 나가기 위해 꼭 지녀야 하는 버팀목을 의미한다.

두 사람은 나란히 새학기부터 새로운 전공에 편입해 공부를 이어간다. 이 씨는 청소년 심리학과를, 최 씨는 교육학을 각각 택했다. 이씨는 “청소년 상담지도사 자격증을 따, 나처럼 울분을 가지고 사는 아이들을 돕고 싶다”고 밝혔다. 최 씨가 이 씨에게 했던 바로 그 일이었다.


why3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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