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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작’의 악몽…미술계가 떨고 있다

-이우환ㆍ천경자 사태로 본 과거 미술품 위작 소송 사례
-2005년 이중섭ㆍ박수근 대규모 위작 사건 1,2심 모두 위작 판결
-2007년 박수근 ‘빨래터’ 위작 소송사건, 원고 패소 판결, 진위여부는 미결
-정부 주도 전작도록 연구팀에 관련 인사들 그대로…위작의 악몽 되풀이?

[헤럴드경제=김아미 기자] 국내 미술계가 공포에 떨고 있다. ‘위작’의 악몽 때문이다.

‘단색화’를 중심으로 오랜 침체를 벗고 회복 기미를 보였던 미술시장은 단색화 트렌드를 이끌었던 이우환 작가의 작품 위작 시비로 또 다시 얼어붙는 형국이다. 여기에 고 천경자 화백의 차녀를 비롯한 유족들이 과거 ‘미인도’ 진위 논란을 종식시키겠다며 친자 소송에 나서, 미술계는 그야말로 ‘시계제로’ 상태에 빠졌다.

이우환, 천경자 사태를 계기로 과거 국내 미술품 위작 사례를 되짚어봤다. 아울러 이러한 위작 사건을 방지하기 위해 문화체육관광부가 주도하고 있는 전작도록(카탈로그 레조네) 사업도 함께 살펴 봤다.

▶2005년 이중섭ㆍ박수근 대규모 위작 사건=미술품 진위 여부를 가리는 데 작가 혹은 유족의 주장이 가장 중요할까. 과거 유족의 주장과는 별개로 전문가 과학감정, 안목감정 등을 통해 위작 여부를 가린 법원 판례가 있다. 오히려 소송을 제기한 유족 및 작품 소장자가 원고에서 피고로 뒤바뀐 사건이다. ‘2005년 이중섭ㆍ박수근 대규모 위작 사건’이 그렇다.

2005년 3월 이중섭 화백의 아들 이태성씨가 서울옥션에 부친의 작품 8점을 판매 의뢰해 4점을 낙찰받았으나 한국미술품감정협회가 이 작품을 모두 위작이라고 주장하면서 논란이 시작됐다. 이어 김용수 한국고서연구회 고문이 자신이 갖고 있던 이중섭ㆍ박수근 작품 650점을 공개하면서 논란이 확산됐다.

이태성씨와 김용수씨는 당시 협회 감정위원이었던 최명윤(국제미술과학연구소장) 씨에 대해 유족과 망자의 명예를 훼손하고 업무를 방해했다는 이유로 각각 형사 소송을 제기했다. 검찰은 두 사람이 제출한 그림 58점을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국립현대미술관 등에 의뢰, 모두 가짜라는 결론을 내렸고, 같은 해 10월 최씨에게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혐의없음’ 처분을 내렸다.

여기서부터 사건이 반전됐다. 검찰은 김용수씨로부터 압수한 이중섭ㆍ박수근 그림 2771점을 사건 1년 4개월 뒤인 2007년 2월 최 씨가 이끄는 국제미술과학연구소에 감정 의뢰했다. 과학감정을 신뢰했다는 얘기다. 같은 해 7월 연구소는 58점을 포함 2829에 달하는 전체 작품에 대해 위작 결론을 내렸다.

석달 뒤인 10월, 검찰은 김용수씨를 구속 기소하고 일본 국적의 이태성씨에게는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2009년 2월, 1심 법원은 김용수씨를 사기죄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판결했다. 이에 김씨가 불복, 항고했지만, 2013년 1월, 2심 재판부는 김씨의 압수물 전량에 대해 위품 확정 판정을 내리고 항고를 기각했다. 이 사건은 현재 대법원 심리 중이다.

▶2007년 박수근 ‘빨래터’ 소송…끝나지 않은 진위 논란=박수근의 ‘빨래터’ 소송 사건은 앞서 벌어진 이중섭ㆍ박수근 위작 사건과는 조금 다른 양상으로 펼쳐졌다. 1심 법원 판결로 사건은 일단락됐지만, 이후 많은 논란을 낳았다.

여섯명의 여인이 시냇가에 앉아 빨래를 하고 있는 모습을 그린 그림. 박수근의 ‘빨래터’가 2007년 5월 서울옥션 경매에서 국내 경매 사상 최고가인 45억2000만원에 낙찰됐다. 그러나 같은 해 12월 미술잡지 ‘아트레이드’가 위작 의혹을 제기했고, 서울옥션은 이 잡지를 상대로 30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걸어 2년여 법정 공방을 펼쳤다.

당시 법원은 존 릭스가 1954~1956년 사이 작품을 소장하게 됐다는 서울옥션의 주장을 사실로 판단했다. 서울옥션 ‘빨래터’를 이 시기 그려진 작품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근거가 된 것이 한국미술품감정연구소(현 한국미술품감정평가원)의 감정보고서다.

보고서는 ‘동일 도상의 반복’, 즉 한 화가가 같은 그림을 여러 장 그릴 수 있다면서, 비교 대상으로 시공사 도록에 수록된 빨래터(1950년대 후반)와 열화당 도록 작품해설 참고도판 6에 수록된 빨래터(1958, 소재불명)를 들었다.

그런데 열화당 참고도판에는 ‘1958년작 소재불명’으로 돼 있는 빨래터가 연구소의 감정보고서에는 ‘1954년 개인소장’으로 적시됐다. 그러면서 존 릭스가 이 시기 작품을 갖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는 결론이 난 것이다.

이후 서울옥션 빨래터는 ‘진품 추정’ 판결이 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에서는 ‘진품’ 판결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그러나 법원 판결문 원문은 이와는 달랐다.

원문에는 ‘(빨래터가) 위작이라는 근거로 볼 수 없다’거나 ‘(원소장자인) 존 릭스가 박수근 화백으로부터 교부받았을 것으로 일응 추정된다’ 등의 표현이 적시돼 있었다.

또한 법원은 ‘원고(서울옥션)의 피고들에 대한 청구를 모두 기각하고, 소송 비용은 원고가 부담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사실상 원고 패소 판결이다.

▶문체부 ‘전작도록 사업’ 이대로 괜찮나=현재 문체부는 이중섭ㆍ박수근 전작도록 사업을 추진 중이다. 문체부 산하 예술경영지원센터(이하 예경)가 주관, 지난해 6월 미술계 전문가 5인으로 사업 추진위원회가 꾸려졌고, 여기에서 2명의 작가가 선정됐다. 각 작가별로 연구팀도 구성됐다. 추진위원회와 연구팀은 대부분 미술평론가와 미술사학자, 미술관 큐레이터들로 구성됐다.

문제는 이 사업을 맡아서 진행하고 있는 ‘전문가’들이다. 추진위원회와 연구팀에는 앞서 언급한 2건의 위작 소송 사건 관련자들이 대거 포함돼 있다.

서울옥션 이중섭 위작 사건 당시 기획자와, 빨래터 소송 당시 특별감정위원장, 그리고 감정위원들이다. 이들 중에는 최근 경찰 감정위원회에서 위작으로 결론 낸 이우환 작품을 2012년 진품으로 판정했던 감정위원들도 있다. 

맨 위부터 시공사 도록에 실린 빨래터, 서울옥션의 빨래터, 그리고 열화당 도록에 실린 빨래터. 모두 박수근 화백이 그린 작품일까.


책임 유무 여부를 떠나 과거 위작 사건의 중심에 있었거나 이해관계가 있는 인사들이 전작도록 사업에 포함돼 있다는 것에 대해 미술계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2월 15일 ‘官주도 전작도록 제작 추진…미술계 부글부글’ 본지 보도 참고> 무엇보다도 진위 여부가 결론나지 않은 ‘빨래터’를 박수근 전작도록에 어떻게 실을 것인지도 논란거리다.

한편 미술계는 이 사업이 정부 주도 사업인지 민간 용역 사업인지 모호하다는 지적도 함께 제기하고 있다.

이에 대해 문체부 관계자는 “전작도록은 정부 주도 사업이 아닌 민간 지원사업”이라고 해명했다. 전문성을 위해 민간에 일임했다는 건데, 문체부 말대로라면 작가 도록 당 3억원이 들어가는 민간 용역 사업을 경쟁입찰도 없이 진행한 게 된다(국가계약법상 5000만원이상 공공기관 경쟁입찰). 예경은 민간기업이 아닌, 아직 법인화되지 않은 문체부 산하 기타 공공기관으로 돼 있다.

문체부 관계자는 또 “이 사업이 갑자기 시작된 것이 아니라 이미 2014년부터 ‘2015년 미술분야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정부가 나서서 세운 사업계획이라는 건 데 민간사업이라는 주장과는 앞 뒤가 맞지 않아 설득력이 떨어진다.

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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