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현장에서] 이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
정의화 국회의장과 여야 국회의원 모두는 이종걸 원내대표가 “나라를 구하는 심정으로 하겠다”고 배수진을 친 순간부터 필리버스터가 불러올 파급력과 파장을 예상했어야 했다. 야당의 필리버스터는 연일 신기록을 갱신하며 국회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갈등은 정 의장이 테러방지법을 직권상정하면서 촉발됐다. 야당은 해당 법이 국가정보원의 정보수집 권한 남용을 불러올 것이라며 극렬하게 반대했고 본회의 상정을 막고자 필리버스터, 즉 무제한 토론을 신청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의원 한 명당 발언 시간을 5시간으로 잠정하고 순서를 정했다.

첫 번째 주자이자 더민주의 ‘젊은피’인 김광진 의원은 날을 넘기면서까지 5시간35분 동안 발언해 신기록을 세웠다. 급기야 세 번째 주자인 은수미 의원은 김 의원의 기록을 넘어섰다. 7시간 이상 필리버스터를 이어가던 그가 “아직 하고 싶은 말의 60%밖에 하지 못했다”고 하자, 야당 의원들조차 당황해 헛웃음을 쏟아냈다.

여야 모두 테러방지법을 놓고 ‘끝장을 보겠다’는 각오로 시작했지만 이틀째 접어들자, 체력의 한계에 직면한 모양새다. “조금만 더 시간을 버텨달라”, “화이팅”이라는 응원의 목소리가 가끔 나오고 있지만, 본회의장 의자에 앉아 있는 대다수 의원들은 밀려오는 잠을 쫓아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한 명씩 교대로 바통터치를 하며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발언에는 집중하지 않고 PC나 스마트폰을 만지며 시간을 때우고 있다.

본회의장에서 의원들의 눈은 초점을 잃었고 쏟아지는 졸음 때문에 고개를 떨구었다. 합의와 토론의 정신이 사라진 국회는 필리버스터라는 괴물을 낳았다. 국민의 머릿속에는 필리버스터가 19대 국회를 기억하는 마지막 장면으로 남을 것이다. 여야 모두 할말은 있겠지만, 그렇잖아도 국회 무용론이 나오고 있는 판에 불신만 더욱 심어준 꼴이다.

필리버스터 자체를 탓하는 건 아니다. 테러방지법을 놓고 토론할 시간이 충분히 있었지만 여야는 서로의 주장만 강요했고 세련된 조율은 아예 없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전가됐다.

한 배우가 드라마를 통해 유행시킨 대사가 얼핏 떠오른다. 정 의장을 포함해 여야 모든 국회의원들에게 이렇게 묻고 싶다. “이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
 

essential@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