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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형설지공(螢雪之功)’ 73세 16학번 새내기…“동년배에게 행복 선사하는 상담사 될 것”
[헤럴드경제=신동윤 기자] ‘공부 하는데는 다 정해진 때가 있다’는 옛말이 있다. 10~20대 젊은 나이에 공부를 해야 한다는 의미지만 일성여고 학생들에게만은 다른 의미로 쓰인다.

24일 오전 서울 마포구 대흥동에 위치한 마포아트센터에서는 제 때 학업을 마치지 못한 40~80대 만학도들에 대한 졸업식이 열렸다. 이날 졸업식을 통해 중학교 과정 314명, 고등학교 과정 213명의 주부 학생들이 벅찬 마음으로 중ㆍ고교 졸업장을 받아 들었다.

올해 나이 73세로 고등학교 3학년5반에 재학했던 이화자(사진)씨 역시 이날 졸업장을 받았다.

먹고 살 쌀도 없었던 어린시절 이씨는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할 뻔 했다. 그는 “초등학교도 4년간 다니다가 학비를 못내 1년간 쉰 뒤 나머지 2년을 다녀 겨우 졸업했다”며 “당시 또래 친구들보다 유난히 공부에 관심이 많아 학교를 그만두라는 부모님의 권유에도 펑펑 울며 떼를 써 학교를 다녔다. 그렇지 않았다면 졸업도 못했을 것”이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초등학교 졸업 후 이씨는 중학교 진학에 대한 욕심을 접은 채 본격적으로 고향인 경기도 화성에서 농사를 짓고 집안일에 나섰다. 또, 18세가 됐을 때는 상경, 동대문시장에서 점원으로 일했고, 혜화동 신학교 식당에서 일하며 생활비를 벌기 시작했다.

26세가 된 이씨는 결혼하며 안정된 생활을 꿈꿨지만 불과 4년만에 남편과 사별하고 말았다. 혼자가 된 이씨는 두 딸을 위해 가리지 않고 일했다. 이씨는 “척추 수술을 크게 한 뒤 멀리 일하러 다닐 생각은 할 수도 없었다”며 “밤새 인형 눈도 붙이고, 헝겁 인형 만들기나 뜨개질 등의 돈 벌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끊임없이 했다”고 말했다.

70세가 됐을 때 이씨는 불현듯 그동안 생계를 잇느라 잊고 있던 학구열을 다시 떠올리게 됐다. 그는 “아이들 대학도 보내고 결혼도 시키고 나니 이젠 나를 위해 살 수 있는 나이가 됐다고 느꼈다”며 “큰 딸의 권유로 일성여중에 입학해 공부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학교를 다녔던 지난 3년간 이씨의 생활은 ‘형설지공(螢雪之功)ㆍ주경야독(晝耕夜讀)’이었다. 청소일을 하면서 주어진 짧은 쉬는 시간에 주머니에 써서 넣어둔 영어단어와 한자를 꺼내보는 등 없는 시간도 쪼개 공부에 전념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이씨는 5개 한문연구 단체가 실시하는 한자자격증을 모두 따는데 성공했다.

지난해 11월 50세가 넘게 차이나는 어린 학생들과 같이 수능을 봤고, 결국 대학에도 당당히 합격했다. 세 곳을 합격했지만 이씨는 숭의여대 가족복지학과로 진학했다. 그는 “심리학 공부를 좀 더 해서 노인들을 위한 상담을 해 이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고 강조했다.

이씨는 대학 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일을 열심히해 스스로 학비를 마련할 예정이다.

한편, 일성여고는 구한말 지식인 이준(李儁) 열사의 고향 함경북도 북청 출신 실향민들이 1952년 설립했다. 교육을 통한 구국운동에 힘쓴 이 열사의 뜻을 기려 학교 이름도 이 열사의 호 ‘일성’(一醒)에서 따 왔다. 중학교 과정인 일성여중과 함께 ‘일성여중고’로 부른다.

전쟁통에 공부할 곳 없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야학으로 시작해 1985년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청소년을 받는 학력인정 학교로 지정됐다. 이후 학업 기회를 놓친 성인 여성을 주된 교육 대상으로 삼아 오늘에 이르렀다.


realbighead@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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