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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커지는 개인금고시장②] 5만원권 수백다발 007가방에 담아와 “이거 들어갑니까”
벽 두께 두배, 1000도 고열에도 너끈한 강력금고…5만원권 발행 후 수요 증가
현금부자 “빌트인 금고 없나” 상인들 “탈세 도와 먹고 사는 꼴” 한숨


[헤럴드경제=원호연 기자] “아이고 마, 우리가 어딜 봐서 장사가 잘 됩니까. 어렵습니다.”

최근의 초저금리 기조로 현금을 집에 쌓아두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금고 시장이 호황이라는 소문과는 달리 서울 을지로4가와 종로 일대 금고 시장 거리의 분위기는 침울했다. 일부 관련 제조업자는 최근의 금고에 대한 관심에 대해 오히려 화를 내는 정도였다.


한국의 금고 문화는 일제 시대 일본에서 들어온 것이다. 정리정돈에 익숙한 일본인들은 집 문서나 기업 계약 서류를 모두 금고에 보관했고 이들로부터 일을 배운 초기 국내 기업들이 금고 시장의 초기 수요자였다. 일본인들이 남기고 간 중고 금고를 고쳐 팔던 수리업자들이 국내 금고 제조와 유통의 기반을 닦았다.

1983년 처음 금고 시장에 뛰어들었다는 김충직 중앙금고 대표는 당시 금고의 몸값이 제일 잘 나갔다고 회상한다. “그때는 하루에도 30~40개의 금고가 팔려나갔다“면서 ”지금은 그때랑 비교해서는 거의 안 팔리는 수준”이라고 밝혔다.

김진호 크라운골드금고 대표는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중요 서류를 금고에 넣어둘 필요도 없어졌고 금리가 아무리 떨어져도 은행에 두는 게 안전하기 때문에 시장 자체가 작아지는 추세“라면서 “이미 망할 곳들은 다 망하고 남은 곳들이 남은 수요를 나눠 과점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전에는 일반 슈퍼마켓에서 쓰이던 금전출납기 형태의 금고는 중소기업에서 그나마 조금 사가는 형편이다. 슈퍼마켓 자체가 대형마트나 편의점에 밀려 사라지는 추세고 이들은 현금보관통이 내장된 POS 단말기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선일금고 등에서 디자인에 중점을 두고 출시한 내화금고는 일반 가정에서 찾는 편이지만 목돈을 은행 대신 넣어두기 위해서는 아니라는 게 이곳 업계의 귀띔이다. 그 용도는 구매자가 누구냐에 따라 달랐다. “부잣집에서 가사 도우미를 의심한 나머지 손타지 않게 금고에 넣어두려고 사든가, 돈 없는 사람이 그나마 결혼 패물 같이 조금 있는 재산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사가는 거야. 극과 극이지”란 게 한 금고 상인의 설명이었다.

그러나 500만~4000만원 대의 강력금고의 경우는 달랐다. 강력금고는 5만원권 발행 이후 수요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 업계의 전언. 한 금고업자는 ”최근에 007가방에 5만원짜리로 1억을 담아와서 금고에 얼마나 들어갈지 재보고 사간 사람도 있다“고 전했다.

일반 내화 금고와 달리 이런 제품들은 벽 두께가 2배 이상되고 1000도의 고열에도 2시간 이상 버틴다. 잠금장치도 다이얼 대신 디지털 버튼 식이나 지문인식 방식을 이중 삼중으로 달았다. 다량의 현금을 넣어 두려면 적어도 이 정도 내구도가 필요하다고 이곳의 상인들은 입을 모았다.

“강력금고를 사가는 사람은 누구냐”는 기자의 질문에 “현금을 많이 만지는 의사 등 전문직이나 연예인 같은 현금 부자들“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최근에는 아예 주택 리모델링 시 아예 금고를 ‘빌트인’ 형태로 설치하고 은폐해 달라는 주문을 받은 인테리어 업자들이 찾는다.


이들이 금고에 현금을 쌓아둬야 하는 것은 저금리 때문이 아니라 세금 때문이다. 하루에 2000만원 이상의 금융거래가 있으면 은행이 금융위원회 금융정보분석원(KOFIU)에 보고해야 하는 고액현금거래보고제도를 피해 탈세를 하거나 ‘10년 간 5000만원’으로 면제 한도가 정해진 증여세를 피해 현금을 자녀에게 넘겨주려는 자산가들이 대부분이다.

한 금고 상인은 “정직한 거래로는 시장이 버티질 못하니 결국 범죄를 도와줘서라도 살아야 하는 꼴이 됐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why3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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