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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롱·욕설 도배된 댓글폭탄…재밌나요?
성향·성별·지역 무차별 언어폭력
게시글서 다수의 눈길 잡기위해
‘더 강한 자극’ 엽기정서 판쳐


#. 스마트폰을 이용해 수시로 뉴스를 보는 이모(48)씨는 최근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고 눈살을 찌푸리는 일이 잦아졌다. 상대를 가리지 않는 조롱과 욕설은 물론 성별, 지역 등과 관련한 혐오 표현을 접하면 그 자체로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씨는 서울 토박이지만 전라도나 경상도 등 지역 혐오 표현에 대한 거부감도 크다. 이씨는 “스마트폰 보급으로 인터넷 사용 시간이 크게 늘었는데 온라인에서 저속한 혐오 표현들은 정화되기는커녕 점점 더 늘어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해 한국 사회를 휩쓸었던 키워드 중 하나인 ‘혐오’가 점차 일상화되고 있다. 우리 국민들이 온라인 상에서 각종 혐오 표현을 접하는 빈도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특정 집단을 비하하며 ‘벌레 충(蟲)’자를 붙이는 신조어가 유행처럼 번지더니 최근에는 일부 여성들이 ‘미러링’(mirroring) 전략을 들고 나와 온갖 ‘남성 혐오’ 표현을 쏟아내고 있다.

‘온라인 시대’에 접어들면서 성별, 지역, 계층을 막론한 저급한 혐오 문화가 국민들의 일상 속에 뿌리내리고 있는 상황이다.

극단적인 혐오감을 표출하고 즐기는 문화는 극우 성향 커뮤니티 ‘일베’(일간베스트)에서 시작됐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초기 일베 회원들은 좌파 성향을 갖는 대상을 혐오해 조롱의 대상으로 삼았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여성이나 세월호 유가족 등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특정 대상을 무차별적으로 조롱하기 시작했다.

일베에는 단원고 학생 교복을 입고 어묵을 먹는 사진과 함께 “친구 먹으니 좋으냐?”라는 글이 올라오는가 하면, 5ㆍ18 광주 민주화항쟁 때 집단 학살된 시민들이 피를 흘리고 있는 사진을 놓고 ‘홍어무침’이라고 표현한 글이 등장했다. 이들은 “재미삼아 그랬다”고 답한다.

그러나 최근 열린 ‘혐오표현의 실태와 대책’ 토론회(서울대 인권센터ㆍ혐오표현 연구모임 주최)에서 발제자로 나섰던 김호(서울대 철학과)씨는 이같은 혐오 표현이 단순히 ‘일베’의 문제로 환원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원래부터 ‘인터넷 문화’에 근저에 깔려 있던 정서가 점차 확산돼 주류 정서로 자리잡았다는 것이다.

김씨의 설명에 따르면 포털과 커뮤니티 사이트 인터넷 게시판 형식에서는 절대 다수의 게시글은 별다른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한다. 소수의 논란적 게시글만 주목을 받고 영향력을 갖다 보니 ‘더 강한 자극’이라는 엽기정서가 자라나는 게 당연한 수순이란 것이다.

때문에 이같은 엽기에 상식적인 ‘윤리의 기준’을 들어서 잘못되었음을 지적하는 것은 엽기 코드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것으로 취급받는다. 이른바 ‘씹선비’(분위기 파악을 못하고 선비처럼 도덕적으로 훈계하는 이들을 비하하는 말) 소리를 듣게 되는 것이다.

이날 발표자들은 혐오 표현을 규제하기 위해서는 차별금지법 제정 등 시스템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류민희 변호사(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는 “혐오 표현에 대해 법적 대응 뿐 아니라 다양한 방법으로 대항해야 한다”며 “무엇이 혐오 표현인지 구별할 수 있도록 일상 속에서 평등 훈련이 시민교육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배두헌 기자/badhone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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