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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난 그럴 일 없다’ 확신이 만든 경멸
‘나와 다른 남’ 타자화에서 시작


“증오는 가슴에서 나오고 경멸은 머리에서 나온다.”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말이다. 증오는 상대적 약자가 강자에 대해서 내뿜는 감정인데 반해 경멸은 자신보다 약자인 대상을 향해 갖는 사회적 편견에서 나온다. 보통 혐오 발언은 그 대상에 대해 두려움과 증오의 형태로 표현되지만 실상은 경멸에 기초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지난 2014년 12월 전북 익산에서 열린 신은미ㆍ황선의 통일 토크콘서트 현장에 한 고등학생이 사제 폭발물을 던진 사건은 우리 사회에서 혐오 문제가 단순히 소수자에 대한 공격적인 언어 표현의 문제를 넘어 이를 행동으로 옮기는 수준으로 심화됐다는 것을 보여줬다.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는 이러한 현상을 대표하는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

김형완 인권정책연구소장에 따르면 혐오는 상대적으로 사회에서 배제하기 쉬운 개인이나 집단을 ’나와 다른 남’으로 타자화하는 데서 시작된다. 내 주변에는 동성애 등 나와 다른 성적 취향을 가진 사람이 있을 수 없고, 나는 절대 장애인이 될 일이 없다는 확신을 갖는 것에서 혐오가 시작된다.

이들은 약자에 대한 자신들의 경멸을 두려움으로 둔갑시킨다.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낯선 것을 잘못된 것으로, 싫은 것을 옳지 않은 것으로 규정하고 공격하면서 이에 가담하지 않는 사람들을 적으로 돌린다. 동성애자, 장애인, 외국인들이 언제 우리의 뒤통수를 치고 공격하지 모른다고 말한다.

김 소장은 “혐오는 차별을 야기하는 권력관계나 구조를 은폐하고 소수자에 대한 탄압을 마치 동등한 사람들 간의 갈등으로 왜곡하면서 가해자는 늘 당당하고 피해자가 죄송해야 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진다”고 지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혐오 발언과 소수자에 대한 공격에 나서는 이들 역시 이같은 차별 구조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나영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팀장은 “일베를 위시한 혐오 운동은 노동유연화와 청년 실업의 심화로 대다수의 청년들이 미래를 계획할 수도, 안정적인 보상을 기대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절망한 이들은 이제 막 시작된 ’인권’ 논의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제도적 보상을 일종의 ‘특혜’로 여기고 이에 대한 혐오를 적극적으로 표현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나 팀장은 “중요한 것은 이러한 감정들이 비단 일베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며 불안을 공유하고 있는 많은 이에게 언제든지 전염될 수 있다는 것”이라며 “현재의 혐오 표현에 대한 대응이 개인에 대한 법적 제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만 가서는 해결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원호연 기자/why3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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