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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술품 위작 뿌리뽑을까 ③] ‘문화재 및 미술품 유통관리법’ 도입 시급하다
- 미술평론가 정준모(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특별기고


[헤럴드경제] 최근 문화재ㆍ미술동네가 위작관련 이야기로 어수선하다.

이러한 상황은 선진국인 미국도 마찬가지이다. 보증서를 위조해서 스미스소니언에 가짜 작품을 판 사건을 FBI가 수사 중이고, 가짜 그림을 판 세계적인 화랑 크뇌들러와 프리드만 갤러리가 법정에서 죄의 유무를 가리고 있다. 또 도난당한 피카소 작품을 터키에서 찾고 보니 위작으로 드러나 입방아에 오르기도 했다. 


감정기구, 카탈로그레조네 등 많은 수단과 장치를 갖춘 미국 같은 선진국에서도 미술품 위작 사건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10년간 미술품의 투자 수익률이 연평균 7%를 넘어섰다. 미술품은 이제 대출의 담보나 자신관리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는 수단이 됐다. 금융자산과 닮은 미술품은 이제 그에 걸맞은 규제가 필요하다.

그러나 수백만 달러, 수억 원을 훌쩍 넘는 문화재ㆍ미술품 거래가 당국의 관리 감독이나 법적 구속력을 지니는 매매 계약없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미술품에 관한 법률이 따로 없다. 문화재의 경우 문화재 보호법에서 거래를 기록하는 정도의 규제책만 있고, 민법과 상법에서 하자담보책임을 명시하고 있는 정도다.

▶문화재 및 미술시장 들여다보면=건강한 미술시장을 위한 많은 장치들이 검토,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땜질식 처방’에 급급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젠 민ㆍ관 대책이 종합적이고 유기적으로 작동하는 체계가 필요하며, 이를 통해 문화재 및 미술품 유통의 투명성과 안정성을 확보해야 한다.

수억, 수십억을 호가하는 문화재ㆍ미술품 거래가 법적 구속력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문제다. 현재 문화재의 경우 문화재보호법 제75조 제1항에 의거, 유형문화재나 유형의 민속문화재를 매매 또는 교환하는 자는 문화재매매업 허가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거래내역을 대장에 정리하는 정도의 의무만 부여받고 있다.

미술품의 경우 화랑업은 사업자 등록만 하면 누구나 거래가 가능하다. 거래시 매매목적물에 하자가 있는 경우 매도인이 부담하는 하자담보책임이나 미술품 거래에서 선행 문제가 되는 진품 보증의 문제 및 감정인의 책임은 손해배상 등을 통한 민법의 적용을 받으며, 위탁매매, 그리고 상인간의 거래에서의 주의위반, 보험 및 경매에서 수수료 책정문제 등의 경우 상법의 적용을 받는 것이 전부다.

게다가 한국 미술시장은 대형 화랑이나 문화재상 몇 곳이 전체 시장의 90%을 독식하는 ‘쏠림현상’이 심하다. 또 소위 ‘나까마’라 불리는 중간 유통상들이 우후죽순 격으로 나타났다 사라지면서 유통 질서를 교란시키고 있다. 이우환 위작 관련 사건도 여기에서 기인했다.

거액의 문화재 및 미술품이 계약서조차 없이 거래되는 것이 허다하고, 거래 관련해서 문서를 작성한다 하더라도 그 문서의 양식과 내용이 제각각인 경우가 많다.

가장 중요한 건 진위 문제다. 현재 세계 미술시장에서 거래되는 미술품 중 10% 정도가 위작으로 알려져 있다. 진위 감정은 문화재ㆍ미술 시장의 건강을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현재 시장규모가 왜소한 한국에서 문화재ㆍ미술품 감정은 최소한의 생계 보장도 안 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다른 나라 예술법 사례=미국은 1983년 ‘문화예술법(Arts and Cultural Affairs Law)’, 일명 ‘아트로(Art Law)’를 제정, 시행했다. 전후 경제성장과 더불어 미술품의 수요가 급증하고 거래량도 증가하면서 법적 분쟁이 생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지금의 한국 상황과 비슷하다.

실제적인 법적 규제에 대한 논의는 1971년에 시작됐다. 그 해 미국 미술연합회와 뉴욕 변호사회, 미술품자원봉사변호인단 등 3개 단체가 ‘시각예술가과 법(The visual Artists and the Law)’을 출간한 것이 출발이었다. 상법, 민법 등 미국 법률 중에서 미술품과 관련된 법률들을 가려내 집대성한 책이었다.

이즈음 스탠퍼드 대학의 존 메리만(John Merryman)과 알바트 엘슨(Albart Elson)이 법전공자와 미술사 전공자들을 위해 미술품 관련 도덕적, 법률적 문제에 대한 강의를 개설했고, 1972년 7월 실천적법률회가 지원하고 헤디 보이트(Hedy Boyt)가 주도해 미술가, 화랑, 미술관에 대한 법률적, 사업적 문제에 대한 워크숍을 개최하면서 논의가 발전했다. 이때부터 예술법 입법의 근간을 이루는 수많은 연구물들이 출판됐다.

뉴욕 주의 경우 1966년까지 미술품시장에 대한 어떤 법적 규제도 없었다. 그러다 뉴욕 상법에 미술가의 권리와 그들의 작품을 보호하기 위한 규정으로 몇 개의 장을 추가했고, 1983년 비로소 새로운 문화예술법이 제정되기에 이르렀다.

미술시장 후발주자인 중국은 199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예술법 논의가 활발하다. 그 중심에는 당시 중국미술가협회장이었던 우 주렌(吴作人)이 있다. 그는 1990년 12월 11일 중국미술가협회, 우 주렌 순수미술 국제기금, 중국저작권협회, 매일신문등과 함께 심포지엄을 열었고, 저작권과 추급권 등에 관한 토론을 이어갔다.

1994년 9~10월 예술법에 관한 중국 최초의 강의가 4주간 대학에서 경제학 교수인 주오 린(Zhou Lin)에 의해 열렸고, 이를 계기로 관련 강좌가 이어졌다. 또 비평가, 법률가들은 미술과 법률 간의 연계라는 새로운 현상을 연구, 분석해 책을 저술하고 강의를 하고 법률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러한 노력의 성과로 중국은 1994년 ‘미술품의 경영에 대한 관리법’을 공포, 문화재ㆍ미술품 거래 관련 법제를 마련했다. 이 법에서는 화랑과 미술품회사, 경매회사의 설립과 허가, 화랑 등급제 등 장치와 각 시설별 최소한의 전문 인력, 구비서류, 윤리강령 등을 규정하고 있다. 물론 미술 전시까지 허가를 받도록 하고 있어 “과도한 규제”라는 지적을 받는 부분도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대안은=우리도 ‘문화재 및 미술품 유통관리법(가칭)’이 필요하다.

문화재와 미술품을 판매하고 중개하는 사업자들의 경우 최소한 경영 책임자 또는 설립자의 자격과 문화재 및 미술품 전문중개사 자격을 갖춘 전문 인력 배치 등에 관해 상세하게 규정하고, 자본금과 공간의 면적, 판매 또는 중개하는 문화재 미술품의 출처 증명과 내부경영관리 규정 등을 법으로 정해야 한다.

주요 골자는 모든 거래 시 필수적인 서류를 작성해 남겨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 거래 관련 ‘표준계약서’를 도입하고 여기에 부대 서류로 문화재ㆍ미술품의 소장이력(provenance)과, 전시이력(exhibition history), 문헌자료(bibliography), 상태보고서(Condition Report), 수복보존처리이력(conservation history) 등을 작성해 거래되는 작품과 함께 교부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작품과 관련된 목록하자담보책임 제척 기간의 장기화와 더불어, 작품의 출처와 작품의 상태 등을 분명하게 기록으로 남겨 과거 소장자의 신원을 확실하게 담보하도록 하는 것이다.

특히 ‘작품보증서(Artwork Guarantee)’와 미술품감정서의 교환 의무화는 물론, 현행 문화재 미술품의 위작 제작 및 유통사범을 중형으로 다스릴 수 있도록 처벌 조항을 강화해야 한다.

또 거래 내역 모두를 해당업체의 컴퓨터에 저장하도록 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야 한다. 이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세무당국과 연계해 판매 가격이 통보되도록 하면, 기업의 매출과 이익도 투명하게 집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미술품 양도차익에 대한 과세 자료로도 활용할 수 있다.

현재 미술계 일부에서 ‘추급권’ 시행 논의가 활발한데, 이 법은 작가들의 권익과 관계되는 ‘추급권’ 시행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추급권은 이미 프랑스 등 40여개 국가에서 도입했는데, 미술품 가격 상승에 따른 경제적 이익을 미술가에게도 일부 되돌려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한편 이 법률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 문화재ㆍ미술품 전문중개사 제도도 심도있게 함께 논의돼야 한다. 전문 중개인이 되기 위해서는 미술사 석사학위 이상의 학력을 갖춘 이들을 대상으로 1~2차에 걸친 자격 시험을 치르도록 해야 한다. 기본 과목으로는 한국회화사, 한국근ㆍ현대미술사, 한국공예사, 서양미술사, 현대미술사 등을 평가하고, 문화재ㆍ미술품 분석 및 서술론, 한국 근·현대 작가분석, 도상분석방법론, 재료학, 감정학 등을 1차에서, 2차 시험에서는 자신들의 전공에 따라 (예를 들면 ‘조선후기회화’ 전문중개사처럼) 세부적으로 평가하면 된다.

이제 미술계는 보다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제도를 논의해야 한다.

onlinenew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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