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이윤택 감독 작심 발언 "개판의 시대, 깽판으로 저항"
[헤럴드경제] “개판의 시대에는 깽판으로 간다.”한국 연극계의 거장인 극작, 연출가 이윤택(64)이 “연극을 연극답지 못하게 하는” 한국 사회 현실을 정면 비판하며, 한 시대와 인간에 대한 담론을 제시하는 연극의 본령으로 돌아가겠다고 선언했다.

이윤택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은 12일 서울시 종로구 혜화동 게릴라극장에서 열린 이 극단 30주년 기자간담회에서 “30주년을 스스로 반성하고 초심으로 돌아가는 계기로 삼으려 한다”며 “지금 한국 연극이 정치적으로 예속되고, 그 허파인 소극장 연극이 사라지고, 볼만한 연극이 없다는 소리가 들리는 이유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한 결과”라고 밝혔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 지지 발언을 한 이 예술감독은 지난해 연극계 최대 이슈였던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예술계에 대한 정치외압·예술검열 논란의 당사자다.

이 예술감독은 그동안 이와 관련해 말을 아껴왔지만, 이날은 작심한 듯 문화예술을 둘러싼 한국사회의 분위기와 풍토에 대한 비판적 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오늘날 “한국 연극이 연극답지 못하다”고 진단하면서 그 원인으로 “좌우 이데올로기의 굴레”, “담론이 사라지고 새로운 잡설만 무성한 대중제일주의”, “(공공)지원에 의존”적인 연극계 현실을 꼽았다.

이 예술감독은 “더는 우리를 좌우의 이데올로기로 묶지 말라”며 “연극을 시작할때부터 검열받았지만 21세기 연극은 좌우의 이데올로기를 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좌우, 남북, 지역감정, 이런 낡은 이분법적인 세계로부터 연극은 한 단계 성장해야한다.”그는 또 “한국 연극의 특징은 세상과 인간에 대한 종합적 통찰력, 담론을 제시하는 것”이라며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연극에서 담론이 사라지고 개인사적 새로움만이야기하는 잡석만 무성해졌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번에 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이 엄청나게 줄어들었다”며 “차라리 이번 기회에 지원으로부터 독립해야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그동안 순수예술이 너무 (공공)지원에 의존하면서 말랑말랑하게 살아서 이번에 날벼락을 맞았다”며 “가난한 연극을 다시 하고, 경제적 독립을 해야 한다”고강조했다.

“김수영의 시처럼 결국 적은 나 자신에게 있다. 나 자신의 게으름과 나 자신에 대한 환멸, 무책임이 문제다. 나부터 세상과 직면해야 하는데 그동안 너무 물렁물렁하게, 너무 쉽게 세상과 만나지 않았는가 하는 반성을 심각하게 하고 있다.”그는 오랜 시간 한우물을 파면서 높은 예술적 경지를 이룬 예술가들을 홀대하는현실에 대한 울분도 토로했다.

자신을 비롯해 오태석, 이강백 등 거장들의 작품이 한국문화예술위의 지원 사업에서 줄줄이 탈락하고, 전위 연극으로 1970년대를 풍미한 기국서 연출은 “생계유지를 위해 아주 비천한 노동”을 하고 있는 사례 등을 들며 “이것이 제대로 된 사회인가, 한국사회가 이렇게 야만적일 수 있는가에 대한 분노가 있다”고 말했다.

“지금 한국사회의 모든 문화정책은 ‘골고루’다. 잘하는 것은 통하지 않는, 평준화의 문제다. 또 한국사회가 늙은 사람들을 박대하는 이유는 천민자본주에 있다. 늙은이에 대한 박대는 천박하고 세속화한 로마 시대와 같다.”이 예술감독은 “이제 제대로 싸워보겠다”며 “싸움의 방법은 블랙유머”라고 했다.

“20세기라면 비장하게 싸우겠지만, 21세기에는 비장하게 싸울 상대가 없다. 개판의 시대에는 깽판으로 가겠다. 소극장에서 대단히 재미있고 화끈하고 불편한 연극으로 저항하겠다.”올해 내내 이어지는 30주년 기념 공연에서 젊은 연극인들은 “마구잡이로 거칠게”, 이윤택 예술감독은 “세련되지만, 기존의 형식을 벗어난” 작품을 올리는 것이 ‘깽판’의 방법이다.

이 예술감독은 연희단거리패의 소극장 무대에 배우 유인촌과 명계남을 세우고 싶다는 바람을 밝히며 공개적으로 ‘구애’에 나서기도 했다.

“정치적 멍에, 틀에 갇혀 배우로서 너무 좋은 재능이 제한되는 불상사를 이제는씻어내야 한다. 그것이 30주년 연희단거리패의 책무라고 생각한다.”연희단거리패는 이윤택이 1986년 부산에서 창단한 한국 대표 극단이다. 부산 가마골 소극장, 밀양 연극촌, 서울 대학로 게릴라극장과 우리극연구소를 중심으로 독자적인 연극 양식을 갖춘 수준 높은 작품들을 꾸준히 선보여왔다.

올해는 창단 30주년을 기념하며 어느 때보다 다채로운 무대를 준비했다.

한국 연극계의 거장 이윤택과 원로작가 윤대성, 젊은 작가 김지훈 등의 신작과 이 극단을 대표하는 작품들이 기다린다.

기국서 연출의 극단 76단, 박근형 연출의 극단 골목길과의 합동 공연도 예정돼 있다.

연희단거리패가 배출한 젊은 연출가들, 황선택·오세혁·차현석·오동식·이채경의 무대도 선보인다.

onlinenews@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