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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차대전의 상처와 종전후 사회의 혼란상 묘사
전쟁의 광기가 세계를 덮쳤던 시기, 카메라를 들고 전선으로 거리로 뛰쳐나간 네오리얼리즘 영화감독 로베르토 로셀리니는 1947년 ‘독일0년’이란 영화를 발표했다. 패전 후 폐허가 된 독일 시민의 삶을 12살 소년의 눈으로 그린 영화는 소년의 곧이 곧대로의 시선을 통해 잿더미 속 사람들의 두려움, 무기력, 공포를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1945년 종전은 폐허로 귀착됐지만 한편으론 완전히 새로운 출발을 의미하기도 했다. 말하자면 백지상태, 제로에선 무엇이나 가능했다. 그래서 런던에 망명 중이던 독일 사회민주주의자들은 ‘독일0년’이라는 말을 만들었고 로셀리니는 이 말을 자신의 영화에 차용했다.


1945년이라는 한 해를 대상으로 세계사를 써내려간 ‘0년’(글항아리 펴냄)은 아시아 연구자로 이름이 높은 저널리스트 출신의 이안 부루머 뉴욕 바드대 교수의 역작으로 그는 현대문명과 상처의 뿌리가 이 곳에 닿아있다고 본다. 그의 탐색은 네덜란드 출신의 아버지의 전쟁체험에서 시작된다. 독일로 끌려갔다가 종전 직후 연합국의 폭격과 기아, 소련병사에게 처형될 뻔했다가 간신히 살아남아 귀향한 얘기다. 그런 전쟁담은 도처에 있었고 특별한 게 아니란 사실에 그는 국제적인 관점으로 시야를 넓혀간다.

저자는 종전 뒤에 따라온 해방 콤플렉스, 연합국과 점령지 혹은 회복한 땅의 여성들과의 친교, 기아와 보복, 성적 해방, 귀향, 매국노 처벌 등 당시 각 지 혼란의 사회상을 다각적으로 그려나간다. 그는 전범 재판의 불완전성, 평화와 인권, 야망의 문명화 등 논란이 많은 주제들도 정면으로 마주한다.

현대사의 결정적 시기를 이념적이거나 지나치게 개인적이지 않은, 바꿔말하면 도시의 스트리트나 마을 어귀 정도에서 바라보는 적당한 거리의 시선 덕에 독자들도 사진 감상하듯 한 시대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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