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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신의 가족은 안녕하신가요?…소설이 묻다
설 연휴때 읽을만한 가족소설
해체되는 가족과 냉담한 사회
요양소 할머니들의 절도 이야기
가족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하는 소녀
부성의 상실·노인문제 등 담담하게 그려


소설을 읽는 재미는 중 하나는 현실과 겹쳐 읽는 데 있다. 허구임에도 소설 속 인물이 바로 옆집에 살고 있을 것 같은 그런 느낌 때문에 쉽게 몰입이 되곤 한다. 현실감이 높은 가족 얘기는 더욱 손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소설의 주제다. 설을 앞두고 가족의 모습을 다양한 시각에서 그린 각국 소설이 다수 출간됐다. 가족의 해체, 부성의 상실, 노인문제가 주류를 이룬다는게 특징이다.


노벨 문학상 후보에 자주 오르는 리처드 포드의 ‘캐나다’(학고재)는 삶의 밑바닥이 한번 삐걱이며 어긋날 때 얼마나 한 순간에 헝클어지는지 보여준다. 주인공 델은 미국 몬태나 주 그레이트폴스에서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쌍둥이 누나와 함께 살고 있다. 공군 대위였던 아버지는 퇴직한 후 금전적인 어려움에 빠져 은행을 털 계획을 세운다. 결국 어머니도 협조하지만 일이 탄로나는 바람에 부부는 철창 신세를 진다. 쌍둥이 남매는 보호시설로 가야만 하는 상황에 처하자 누나 버너는 도망쳐 버리고 델은 아는 아줌마 손에 이끌려 캐나다 국경을 넘는다. 예기치 않은 상황 속에서 돌봐 줄 이도, 안전한 곳으로 데리고 갈 사람도 없는 상태에서 몰래 넘은 국경 이 쪽의 삶 역시 델에게는 정상과는 거리가 멀고 이내 살인사건에 연루된다. 작가는 소년의 회고를 통해 가족의 해체와 냉담한 사회의 이면을 건조한 시선으로 촘촘하게 그려낸다.

‘창문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에 이어 유쾌함과 페이소스를 선사하는 스웨덴산 베스트셀러 ‘감옥에 가기로 한 메르타 할머니’(열린책들)는 79세 메르타 할머니와 네 명의 노인 친구들이 주인공인 범죄소설. 사회가 노년층을 취급하는 방식에 불만을 품은 노인들이 ‘강도단’을 꾸려 자신만의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사회를 바꿔나가려 한다는 내용이다.

다이아몬드 요양소의 원칙은 8시 취침, 간식 금지, 산책은 어쩌다 한번이다.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감옥에 가는게 낫겠다며, 메르타는 요양소 합창단 친구들을 꼬드겨 강도단을 결성하고 감옥에 들어갈 범죄를 계획한다.

보행기를 끌고 다니는 노인들은 의심 한 점 없이 국립박물관에서 모네와 르누아르의 그림을 훔친다. 노인들은 훔친 그림에 수채 물감으로 콧수염을 그려 넣어 싸구려 모작으로 위장해 호텔방에 숨겨둔다. 그러나 그림값으로 받은 돈 절반을 잃어버리고 호텔에 걸어놓은 그림마저 사라지자 범죄를 입증할 수 없게 된 노인은 자신들이 범인이라며 감옥에 보내달라고 청한다.

노인을 인간으로 대접하지 않고 격리 대상으로 여기는 풍조에 대한 날카롭고 유쾌한 펀치다.

짐바브웨 출신의 미국 이민자 노바이올렛 블라와요의 ‘우리에겐 새 이름이 필요해’(문학동네)는 열살 소녀 달링의 시각으로 짐바브웨 독재 정권하에서 보낸 유년기와 미국에서 불법 체류자로서 보낸 청소년기를 생생하게 그려낸다. 배고픔을 채우기 위해 아이들은 맨발로 붉은 흙길을 달려 부다페스트로 향한다. 그 곳에는 멋진 저택들이 있고 훔칠 구아바 나무 열매가 있다. 돌아오는 길, 수풀에 똥을 누다 나무에 목맨 여자의 시체를 발견하고 도망치지만 아이들은 이내 여자의 구두를 팔면 빵을 사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미친다. 달링의 소원은 짐바브웨을 떠나 미국에 가는 것. 먹을 것이 넘쳐나고 풍요로운, 행복이 보장된 누구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나라다. 달링은 어서 이모가 자신을 데려가길 소원한다.

미국에 닿은 달링은 배불리 먹고 쇼핑몰에서 옷을 잔뜩 입어보기도 하지만 결국 달링이 대면해야 하는 현실은 불법 체류자라는 낙인이다. 이모부 코조는 30년 넘게 미국에서 일하며 아이를 키웠는데도 영주권이 없고 포스털리나 이모는 짐바브웨의 식구들에게 돈을 부치기 위해 밤낮없이 일한다. 그러나 식구들은 그런 상황을 알지 못한다. 그저 전화로 이것 저것 부탁하고 돈 보내달라기 바쁘다. 달링 역시 이모를 닮아간다. 여러가지 일을 하며 돈을 벌어 가족들 뒷바라지하기 바쁘다. 그런데도 미국이 꿈의 나라가 아니란 사실을 엄마나 친구들에게 얘기하지 못한다.

영화 ‘멋진 하루’의 작가 다이라 아즈코의 담백한 7편의 단편을 담은 ‘B급 연인’(글램북스)은 사랑의 다양한 모습을 작가 특유의 유머와 생생한 문체로 담았다. 이 가운데 ‘Thanks for Memory’는 휠체어 신세를 지는 시아버지를 돌보는 문제를 두고 어린 며느리와 나이 많은 시누이의 복잡미묘한 신경전이 압권이다.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심란했다. 허물어진 벽 같은 얼굴로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할까? 붉게 타오르는 나뭇잎을, 신의 정맥처럼 파란 하늘을, 기적 같은 새하얀 눈송이를 보며 대체 무슨 생각을 할까?”(김경욱의 ’천국의 문‘에서)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 김경욱의 ‘천국의 문’은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돌보면서 한편으론 아버지의 죽음을 욕망하는 딸의 내밀한 시선을 통해 부정의 상실, 가족 공동체의 해체를 면밀히 그려간다. 

존 치버의 불가해한 일생을 보여주는 ‘존 치버의 일기’는 알코올 중독에 양성애자였던 작가의 고백적 일기. 그의 아들이 추려 엮은 것으로 작가로서의 자존심과 예술적 고뇌 뿐 아니라 가족이란 이름의 불가해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양성애자임을 알고 헤어지려 했지만 끝내 벗어나지 못한 그의 아내, 아들에게 자신의 수치스런 부분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끊임없이 자신에 대한 이해를 갈구했던 한 남자의 상처투성이 인생을 만날 수 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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