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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m 수조깨면 물이 콸콸…‘물’ 만난 요즘 공연들
영화 못잖은 무대장치·특수효과 눈길


‘밤. 비 내리는 들판. 들길에 빨간 옷을 입은 젊은 여인이 우산을 받고 걸어간다. 음산한 기운이 스쳐간다. 형체 불명의 검은 물체가 여인을 덮친다. 외마디 비명. 잠시 후 거친 숨소리.’

1980~1990년대 경기남부연쇄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한 연극 ‘날 보러와요’의 대본에 묘사된 첫 장면이다.

초연 20주년을 맞은 이번 공연에서는 갈대 밭으로 둘러싸인 무대 위에 실제로 비가 내린다. 비오는 날마다 살인 사건이 벌어졌던 그 때 그 현장을 디테일하게 묘사했다.

연극, 뮤지컬 등 공연에서 영화 못지 않은 무대장치와 특수 효과가 눈길을 끌고 있다. 영화와는 달리 제한된 공간과 시간이라는 제약을 갖고 있는 무대 공연에서 이같은 장치들은 관객들의 본능을 자극하며 극적 효과를 배가시킨다. 

연극‘ 렛미인’ 한 장면. 정글짐이 전환되면서 수조로 바뀐다.[사진제공=신시컴퍼니]

실감나는 무대장치…‘물’ 만난 공연들=최근 공연 중인 뮤지컬 ‘레베카’의 무대에도 비가 내린다. 멘덜리 저택 밖에선 검은 구름과 함께 비바람이 몰아치고, 저택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배우들은 실제로 우산에 묻은 빗방울을 툭툭 털어낸다.

게다가 엔딩 장면에서는 멘덜리 저택이 불길에 사로 잡힌다. 처음에는 조명과 안개(Fog)로만 불을 표현하다가 댄버스 부인이 실제 불이 붙은 횃불을 들고 등장한다.

물, 불, 바람을 적절히 활용한 ‘레베카’의 무대 장치는 미세스 드윈터 부인의 죽음이라는 미스터리를 간직한 저택의 분위기를 더욱 어둡고 음습하게 만든다.

최근 호평 속에 막 내린 국립극단의 연극 ‘겨울이야기’의 엔딩 장면 역시 물을 이용해 극적 효과를 높였다. 이 무대에서는 2m짜리 수조가 등장했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왕비 헤르미온느가 16년만에 조각상 속에서 살아나는 장면인데, 레온테스 왕이 이 수조를 망치로 깨뜨리자마자 수조 속 물이 무대 위로 콸콸 쏟아져 나온다.

지난 1월 21일 국내 초연된 연극 ‘렛미인’에서도 수조가 등장한다. 뱀파이어 소녀 일라이가 놀던 정글짐이 180도 전환하면서 뒷편에 감춰져 있던 수조가 등장하는데, 이 수조에 갑자기 물이 채워지며 수심 2m짜리 수영장으로 변신한다. ‘왕따’로 놀림받는 소년 오스카가 이 수조 속에 쳐박히면서 고통의 순간이 스펙타클하게 묘사된다.

▶“극적효과 높지만 설치 까다로워”=사실 무대에 물이나 불이 등장한 건 최근 일은 아니다. 연극이나 뮤지컬, 혹은 콘서트에서 이러한 특수 효과는 종종 이용돼 왔다.

다만 이러한 경우 무대가 물이 젖지 않도록 방수처리를 한다거나, 불이 옮겨붙지 않도록 방연처리를 해야 하는 등 설치가 까다롭다는 단점이 있다.

물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겨울이야기’의 경우 아예 무대 전체에 배수 장치를 했다. 떨어지는 물을 모았다가 빠져나갈 수 있도록 한 장치다. 무대가 수시로 전환돼야 하는 ‘레베카’의 경우에는 이동식 비 내리는 장치를 이용했다.

‘레베카’ 무대 연출을 맡은 정승호 감독은 “물을 이용하면 무대 바닥이 젖을 수 있어 방수처리를 해야 하고, 혹시라도 무대에 물이 흐르면 다른 기계들이 망가질 수도 있기 때문에 까다로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횃불은 가스를 이용해 불을 붙이는데, 배우가 조작을 통해 켜고 끄는 것이 가능하도록 특수 제작됐다. 정 감독은 “만일을 위해 무대 밖에서 스태프들이 소화기를 들고 대기하고 있다가 막이 내려지면 횃불에 붙은 잔불을 소화기로 끈다”고 설명했다.

‘렛미인’의 수영장 장면은 무척이나 노동 집약적이다. ‘렛미인’ 제작사인 신시컴퍼니에 따르면 공연이 끝난 후 호스를 통해 30~40분 가량 수조를 가득 채웠던 물을 빼는 작업을 따로 해야 한다.

오스카 역할을 맡은 배우는 산소 호흡기 등 보조장치 없이 수조 속에서 1분 넘게 잠수를 하는 데 공연 전 따로 특훈을 받아야 했을 정도라고.

신시컴퍼니 측은 “공연 초반 호수에 균열이 생겨서 물이 새는 바람에 곤혹을 치르기도 했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김아미 기자/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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