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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요광장] 거버넌스 역량과 매개조직
거버넌스(governance)가 21세기에 새로운 공공문제 해법으로 제시되고 있다. 국가가 독점적으로 그리고 관료제 방식으로 공공문제를 해결하던 행정국가 패러다임을 지양하고 시장 및 시민사회와의 협력을 통해 공공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하자는 것이다. 

정용덕 서울대 명예교수
한 나라의 거버넌스 역량은 국가권위와 정책정보 능력이라는 두 가지 요소에 의해 판가름 난다. 전자는 국가가 공공정책을 수립하고 그것을 집행하는 데 필요한 권위 능력을 의미한다. 국가정책의 정당성과 관리능력이 핵심이다. 후자는 정책의 합리적 수행에 필요한 정보를 확보하는 능력이다. 정책과정에서 그 대상 시민 혹은 집단의 선호가 적절히 투입되는지가 중요하다. 

나라별로 제도화되어 있는 거버넌스 체계가 다르고, 따라서 국가권위 및 정책정보의 능력 수준도 다르다. 프랑스, 스페인, 그리고 한국 등 아시아 ‘발전국가’들은 강력한 국가권위를 유지하며, 그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다. 반대로 상향식 정책정보 능력 면에서는 낮은 점수를 받는다. ‘쉬타시’ 같은 무소불위의 국가정보시스템을 갖췄지만, 사회현실에 대한 왜곡된 정보수집·보고로 인해 국가실패를 자초했던 구(舊)공산권 나라들을 상기하면 이해가 쉽다.

반면 사회영역의 자발적 공공문제 해결방식인 ‘정부 없는 거버넌스(governance without government)’는 그 운영이 시민사회 중심으로 이뤄지는 그만큼 정책정보 능력이 높다. 반대로 국가권위 점수는 낮을 수밖에 없다.

이 양극단 이념형의 중간에 ‘국가중심주의’ 모형이 위치한다. 국가권위와 정책정보 모두에서 고르게 점수가 높은 가장 이상적인 거버넌스 체계다. 국가는 정책과정에서 궁극적인 권한과 책임을 진다. 그러나 사회부문의 선호 또한 동등하게 존중되고 수용되어 정책에 반영된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국가와 시민사회를 매개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스칸디나비아 나라들이나 오스트리아에서 볼 수 있는 사회 코포라티즘(social corporatism) 조직이 대표적인 예다.

우리도 국가-사회를 매개하는 다양한 코포라티즘 조직들이 제도화돼 있다. 그러나 국가중심주의 거버넌스의 이상을 실현하기에는 취약점이 너무 많다. 첫째, 거시적 코포라티즘 조직으로는 1998년 외환위기 상황에서 구성된 ‘노사정협의회’가 있다. 그러나 지난 20년 동안 실적이 거의 없는 유명무실한 기구다. 지난 가을 가까스로 이뤄낸 노동 관련 법안의 ‘9.15 대타협’마저 파기돼 국민적 실망을 초래하고 있다. 이 삼자협상 체제가 제대로 뿌리를 내리려면 당사자들이 인내심과 진정성을 바탕으로 상호 신뢰를 쌓아가는 성의 있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둘째, 많은 미시적 코포라티즘 조직들이 있다. 직능별로 다양하게 제도화된 협(의)회, 조합, 연맹, 협동조합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대개는 국가가 동원체제로 활용하거나 정책집행비용 절감을 위한 국가 코포라티즘 조직으로 운영돼 왔다. 설상가상으로 잉여 관료나 정객의 재취업기관으로 변질되면서 ‘세월호 사태’와 같은 부조리의 원인이 되고 있다. 국가로부터 여객선사 감독권을 위임 받은 ‘해운조합’ 이사장 자리에 ‘관피아’들이 대를 잇더니, 이번에는 전문성이 전무한 ‘정피아’가 낙하산을 탈 뻔했단다. 1961년에 설립된 농협도 국가 코포라티즘 형태로 운영돼왔다. 그나마 1988년 이후 직선제(2009년부터는 간선제)로 바뀌었으나, 그동안 선출된 4명의 중앙회장 가운데 3명이 비리로 구속됐다. 금품이 오고 간 2015년의 1300여개 농·수·산림조합장 선거에서는 무려 878명이 선거법을 위반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 국가와 사회영역별 대표 조직 간의 소통과 협의가 이뤄지는 제도적 장치는 매우 취약한 상태다. 거버넌스 역량 증진을 위해 대대적인 개혁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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