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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칼럼-김필수]“Stuck in the middle”
“어중간하다”는 말은 비난이다. “이도 저도 아니다”는 지적. “물에 술 탄 듯, 술에 물 탄 듯하다”는 비판.

‘중용’이라는 말은 대개 칭찬이다. 양극의 합일점.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는 상태.

‘중용’을 안좋게 보는 사람들도 드물게 있다. 이들은 ‘중용’이라는 말에서 ‘우유부단한 햄릿’을 떠올린다. 자기 주장이나 생각이 없어 결단을 못내리는 사람이라 비난한다.

경영학에는 ”Stuck in the middle”이라는 용어가 있다. 전략이론 대가인 마이클 포터 하버드대 교수의 말이다. 그는 “제품을 차별화하면서 동시에 원가를 낮추려는 기업은 살아 남을 수 없다”면서 이런 기업이 처한 상황을 ‘Stuck in the middle(중간에 갇혀 이도 저도 아닌 상황)’이라고 했다.

‘제3의 길’은 한때 희망이었다.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의 브레인으로 알려진 앤서니 기든스가 제창했다. 그는 1998년 저서 ‘제3의 길’에서 좌우를 초월하는 실용주의적 중도좌파를 사회발전의 새 모델로 제시했다.

유럽 정치가들은 환호했다. 블레어의 ‘신좌파노선’, 슈뢰더 전 독일 총리의 ‘새로운 중도’ 등이 이렇게 태동해 전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기든스의 저서가 나온 지 20년이 됐다. 한국 정치는 이제 새삼 ‘제3의 길’을 앞다퉈 외친다. 안철수 의원의 ‘국민의당’이 맨앞에 섰다. 중도신당 표방이 그것이다. 영남 중심의 보수정당(새누리당)도 싫고, 호남 중심의 진보정당(더불어민주당)도 싫은, 중도 성향 부동층을 타깃으로 한다. 한국 정치에서 이들 부동층의 비중은 전체 유권자의 30%에 달한다. 새누리와 더민주도 당연히 러브콜을 보내야 한다. 사실 두 당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엄격하게는 각각 중보보수, 중도진보로 규정되는 두 당이다. 조금씩만 좌클릭, 우클릭하면 된다.

실제로 세 정당은 점점 가운데로 수렴하고 있다. 경제민주화 이슈 선점, 이승만 국부 논쟁 등에서 여야가 섞이고, 또 서로가 반대 진영 인사를 장군멍군식으로 영입하며 닮아가고 있다.

선거공학적으로 볼 때 중도 성향 부동층을 공략하는 건 대단히 똑똑한 전략이다. 단기간에 성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거승리라는 목표에 매몰돼 당의 구성을 ‘어중간하게’ 산술적으로 짜집기하는 건 문제다. 장기적으로는 내홍을 야기할 자충수가 될 수도 있어서다.

주지하다시피 ‘제3의 길’은 실패했다. 보수와 진보 양 쪽으로부터 비판을 받고 좌초했다. 우리보다 그나마 정치의 틀이 잡힌 유럽에서도 그랬다. “이도 저도 아닌”, “기회주의자들의 말장난” 등의 비난 속에 ‘Stuck in the middle’로 내몰렸다.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의 말은 아주 쉽다. “도로 중앙에 서 있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양 방향에서 오는 차에 치일 수 있기 때문이죠”

pils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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